이 토론과 이 토론과 이 글에 대한 토론에 연장선상에 있는 토론이다. 3개의 토론에서 답을 못받아서 한꺼번에 세가지 주제의 토론을 진행했다. 안타깝게도 H는 정신을 못차리는 모습. 뜬금없는 괄호는 각주다.    

민주은: 아니 이새끼는 빤스런을 3번쳐놓고서 똑같은 말만 반복하노

H: 뭔 빤스런 너가 이해가 가도록 작성 좀 호페에게 영향을 준 아펠 뭐시기부터 해서

-일련의 시간 뒤에

H:

  1. 답변 :

괴델의 신존재증명에서 너처럼 positive, negative 간 치환을 의문 삼은 이들에 괴델의 견해는 이러함.

내가 전에 positive, negative를 굳이 구분짓지 말고 일관된 속성으로 보는 게 이해하기 편할 거라고 얘기했는데, 그러기보다 괴델의 견해를 보니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존재론적 있음과 관련된 모든 일관성을 극대화해 모순되지 않는 총체적 긍정의 속성으로 positive를 봐야 하는 듯.

negative는 결여, 없음과 일관된 속성이므로 positive에 negative를 치환하는 시도는 애초에 모순이라는 것.

  1. 질문 :

아펠과 하버마스에 대해 “담론과 논쟁의 윤리는 우선 인간이 사회적이고 상호주관적으로 소통할수 있는 존재란걸 받아드리면서 시작함.”

너의 댓글을 발췌해왔는데 너가 이 명제를 무한퇴행으로부터 수호하는 근거가 뭐임? 아펠과 하버마스를 공부해보진 않아서 요구함.

민주은:

  1. 존재론적 있음과 관련돤 모든 일관성을 극대화하여 총체적 긍정의 총합으로 postive를 정의한다면, 논리적으로, 일반적인 사전젓 negative의 의미를 참고하여 총체적 부정의 총합으로 negative를 정의해도 될거임. 그렇다면, “총체적 부정”이라 할지라도 과연 수학적 모순과 연결시킬수 있을지는 의문임. 그리고 저 논문에 따르면 privation의 반대로써의 순수한 속성으로 postive가 기능한다고 하는데, 이를 negative에게도 적용시키기에는 논리적으로 상당히 오류가 있지 않나싶음 그러니까 privation에 대한 반댜로서의 순수한 속성; postive라고 해석하라는건데, 즉 “전지전능 개념”을 postive에 적용시키려는 시도임. 너의 입장에선 이게 더 날카로운 반론이었겠음. 솔직히 말하면 조금 잘못짚은거거든. 아무튼 positive를 그런식으로 해석한다면, negative는 그렇지 않은 개념으로 해석하는게 맞갰음. 언어적으로 둘은 반의어니까 ㅇㅇ

민주은: 그렇다면 2. postive의 반의어를 대입시키는것이 왜 논리적 모순인가? 긍정적인 속성을 반의어로 전부 바꾸는 작업인데 과연 그게 왜 모순이 일어나는지 이해가 안감. 그러한 대입이 모순이되려면 괴델이 두 개념을 대입한 경험초월적존재자가 세불양립함을 증명하거나, ¬postive의 신이 불가능하다는 추가적인 논증을 거쳐야함.

민주은:

  1. 추가로 양상논리를 사용해서 경험초월적존재자에 대한 증명과정에 대한 비판을 진행하다보니 무조건 짚고 넘어가야 할게 생김 사실 저번 글에서, 그리고 B가 지운 글에서도 전부 언급하긴 했는데 신은 논리법칙에서 자유롭다고봄?

민주은: (2번에 대한 대답)”즉 수행모순은 인식론적, 선험적 관점에서 자신을 부정하며, 화용론적 차원에서 자신이 속한 의사소통 공동체를 부정하고 파괴하며, 수행적차원에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는거지. “ 결론만 다시 가져옴 ㅇㅇ 사실상 이러한 자기파괴적 화행의 정당화는 너의 주장의 논리적 토대가 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적 일관성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3대 논리법칙, 즉 모순율, 배중률, 동일률에서 모순율을 부정햐야함. 이러면 3번질문과 연관되는건데, 니가 프리스트의 초일관주의적 논리체계인 LP에 대해 긍정하거나 ⊥와 ¬에 대한 형이상학적 정의를 처음부터 다시 하면됨 ㅇㅇ

그렇다면, 3번질문에서 더 나아가

  1. Correctness Principle를 만족하는 일련의 논리체계에서의, -이때 CP를 충족시키는 논리체계의 갯수에 대한 관점도 선행되어야함- 다원론적 관점과 양진주의적 논리적 다원론을 충족시키는 자연언어-형식언어적 차원에 종속하여 recursive mapping을 수행하고, topic neutral적인 논리학의 성격에서 logical constant의 introduction rules을 정의하셈. 따라서 자칫 형이상학적 입장의 차이로 정리되는 이러한 다원론-논의에서 니 지금까지의 발화에 모순되지 않는 니 입장을 말해주셈 (결국 끝까지 답변을 못들엇다.

H: 뭐 난 논리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당연히 괴델보다 전문가도 아니라 저 이상의 설명을 해줄 순 없음. 근데 괴델이 위처럼 도덕적, 미학적 차원의 positive이라고 말하며 이를 결여와 대비시킨 이유는, 신학적으로도 악의 실체는 “선의 부재”라고 보기 때문과 연관이 있다고 봄. 악은 선의 결여일뿐 실체는 없음. 신은 선 그 자체이고, 선의 결여가 악인 것임.

그래서 너가 악의 실체가 있는 듯이 positive와 negative를 대비시키고 악의 실체로써 완전한 어떤 존재를 상정하는 건 무의미함. “결여”된 속성이 “있다”는 가정이 모순이라는 것임. 괴델은 철저히 플라톤-데카르트적 전통을 따르고 있음.

다시 말하지만 나도 괴델의 신존재증명만으로 신에 대해 모든 걸 설명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님. 다만 신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무신론자 내지는 불가지론자들을 반박하는 것임. 너도 객관적 수학체계가 실재한다고 믿는다면 괴델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불필요해 보임.

민주은: 여기서 negative는 privation이 아니고 ¬postive임. 개념을 혼동하지 않고 읽어보셈

H: 퓨저니즘을 옹호했다고 뭔 진화론이니 뭐니 들먹이는 건 이해가 안 감. 그저 인류사 무수한 폭정을 목격하며 그 위험성들에 대한 경종을 한 데로 모은 것이 보수주의라는 뜻임. 이는 인류가 방심하면 언제든 폭정이 출현할 수 있음도 내포함. 무슨 문제 라도?

민주은: 그렇다면, 객관적 논리체계 (수학체계)가 있다면 신은 거기서 자유롭다고 봄? 3번 질문이랑 같은 내용임

H: 진화론이란, 돌연변이의 출현, 유성생식을 통한 유전자 재조합과 미소변이의 축적 정도로 정의할수 있겠음.

신은 논리체계를 초월한 존재임.

그레서 대체 진화론이 왜 등장함?

무슨 내가 사적 유물론처럼 결국엔 진보할 것이다 라는 주장을 한 것으로 보임?

민주은: 그렇다면 “인류사 무수한 폭정”에 대한 경계로써 기능하는 이념적 체계의 형성이 “주변 환경에 대한 성질적 유리함”을 돌연변이로써 생물적 속성에 추가하는 진화론이랑 다른게 뭐임?

보수주의는 객관적 도덕체계가 아니라 인류사가 진행되면서 천천히 그 폭정에 대한 제한으로 “진화”한거임?

H: ㅋㅋㅋㅋㅋㅋㅋ진화라고 표현하는 게 웃기긴 하네 ㄴㄴ 진리는 실재하고 진리의 축적이 이뤄졌을 뿐임

H: 너가 유물론적 관점을 탑재해 이걸 진화라고 본다면야 안 말리니 굳이 이런 논의도 무의미함.

민주은: 그럼 내가 원래 했던 질문을 다시 재질문함. 5개월동안 답변이 없어서.

“니가 아무리 자유주의에서 이성을 빼고 공리주의를 빼서 취사선택을 하더라도 그중에서 남아잇는 설계주의적 관점조차도 진화론적관점과 양립이 불가능하다는거야. 절대적 도덕이 있기때문에 신이 존재하고, 이땅에 실재하는 모든것이 신이 창조했고, 신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창조론이랑 아예 목적과 의도를 배제하고 유기체의 질서와 복잡성을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로써 설명하려는 진화론적 합리주의를 동일선상에 놓는건 말이 안됨. 단지 전통을 옹호한다고 둘이 같은거임?”

민주은: 그리고 신이 논리체계를 초월한 존재라면, 데카르트, 페일리, 라이프니츠, 크레이그, 괴델같은 “신의 본성에 논리법칙이 포함되어있다” 정도의 스탠스를 가지면 안되는거 아님? 디오니시오스, 크리소스토무스같은 apophatically-신적 묘사의 견해를 가지는게 니 논리적 정합성을 유지할수 있을텐데, 간단하게 YHWH의 관점과 비슷하게 신에 대한 니 스탠스를 incomprehensible, inxepressive, indescribable한 존재라고 해야하는거 아님? 니가 신에대해서 어쩌구 저쩌구 떠들지 말고 ens per se로 간단히 정리하란말임 ㅇㅇ 모든것에 대한 언어화 과정을 거치는 인본주의 이후로 신을 논증되는 그 무언가로 치부하는 (데카르트, 괴델등.) 도전은 결국 신이 아니라 코키토에 다다르는 결과를 맞이하고,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암시한거임 단순한 신에 대한 논증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흐름, 패러다임의 전환, 객관적 진리의 파괴를 의미하는거임. 니가 싫어하는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이신론에서도 볼수 있듯이 자연주의적 실증주의와 이성중심주의적 계몽주의가 도래하고 결국에는 유물론, 과학주의, 기술만능주의로 점철되는 현대인의 도덕과 종교의 종말론적 관점의 시작이 바로 그거임 그럼 여기서 질문할게 두가지가 생기는데,

a. 논리법칙, 그 뒷편에 실재하는 (형식논리적 논리법칙) 그것에대해 자유로운 경험초월적존재자인 신에대한 증명을 대체 왜 논리법칙을 선행하여, 그것에 준행해서 진행하는가?

b. 신을 “증명”하는것이 결국 현대인의 도덕의 종말을 맞이하는 결과를 초래했는데, 유물론을 혐오하는 너로써는 어째서 신을 증명하려는 시도를 하는가?

H: 뭐 내가 인류사, 역사 운운했다고 바로 진화론에 현상해서 해석하는데 그냥 웃길 뿐임. 그리고 천부인권, 자연법의 실재를 인정하는 모든 사상은 결국엔 반진화론적일 수밖에 없음. 니가 말한 그 논리체계가 신 본성에 포함돼있다는 게 곧 이를 초월한 존재라는 뜻임.

(이 반박을 보면 이해를 못한거로 보인다.)

H: 근대철학 이후의 이데올로기적 흐름은 그렇다고 볼 수는 있어도 엄밀히 말하자면 플라톤-데카르트-괴델의 논의에서 필연적으로 신이 전제돼야 하는데, 현대철학이 이 신을 소거시켰기 때문임. 저 세 학자는 양심적인 학자였고, 현대철학은 신을 소거해놓고도 저 논의가 가능하다고 보는 비양심적 내지는 멍청한 사상에 불과함. 객관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상가들이 왜 극단의 개인주의를 암시했다고 평가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음 오히려 칸트부터 그 객관성을 말하길 부정하며 칸트가 그 문을 열었다고 평가해야지

민주은: 나는 현대철학을 언급한적이 없는데? 디오니시오스, 크리소스토무스가 옳다고 했는데, 이게 현대철학자로 보임?

H: ㄴㄴ 니가 이데올로기적 흐름을 언급했기 때문임 그리고 데카르트는 대표적인 근대철학가고

민주은: 물론 괴델이 현대철학자라 그러한 흐름을 부정할순 없겠지만, 미안하게도 그건 이 토론이랑 상관 없음. 나는 니가 신을 증명하고자 한 그 시도(인용)을 비판하는거지 괴델을 비판하는거랑은 거리가 멈. 직관적으로, 신에대한 증명이 유물론과 과학만능주의, 개인주의를 야기했단거지 “신의 존재”를 상정하는거랑은 차이 없음

민주은: *상관 없음

H: 구체적으로 괴델이 어떻게 파편화된 개인을 부추겼는지 설명 좀

(위에서 떠든 내용이 그거다.)

민주은: 그리고 데카르트가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흐름의 포문을 열었단 말이지 도대체 어디서 내가 데카르트의 철학을 (흐름적인 관점을 제하고) 그 철학 본연으로 언급하고, 비판함? “신을 논증되는 그 무언가로 치부하는 (데카르트, 괴델등.) 도전은 결국 신이 아니라 코키토에 다다르는 결과를 맞이하고” 이미 언급함 코키토가 뭔지 이해하면 바로 무슨 뜻인지 알수 있겠음.

H: 데카르트의 논증이 도대체 어떻게 코기토에서 멈춘다고 볼 수 있는지? 데카르트는 코기토 너머의 외부세계가 실재하고, 이 외부세계는 하나님이 창도했다고 봤음. 데카르트가 극단적 개인주의를 암시했다고 보는 건 그냥 멍청한 소리임.

(데카르트는 외부세계 회의론의 대표적인 철학자다.) 데카르트가 코기토에서 멈췄으면 당연히 극단적 개인주의를 연 철학자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봄. 근데 데카르트가 그랬냐? 데카르트는 그렇지 않았고, 데카르트를 이해하지 못한 멍청한 후세대 학자들이 그냥 삽질하는 것뿐임.

민주은: 코키도 에르고 숨 이후에 데카르트가 외부세계를 긍정했다고? 아니 존재론, 인식론의 시작이 데카르트인건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도 나오는 내용 아닌가?

(정말 피해야할 자세지만, 말도 안되는 궤변에 인신공격을 해버렸다.) H: 이해가 안 간다면 설명해줌

생각하는 나는 왜 존재함?

민주은: “인간이 자신의 피조성에 고정되어있다” 이건 데카르트 철학에서 당연한 말 아닌가?

H: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한 게 무슨 문제 라도?

민주은: ???? 데카르트 철학이 “나는 존재한다”니까 결국 그 이유를 신에서 찾았단 말임?

솔직히 토론에서 이런말 안하는데, 방법서설 읽어봄?

H: 방법서설보다 성찰로 데카르트를 보는 게 더 나음

민주은: 외부세계 회의론 하면 바로 떠오르는 4명이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버클리, 칸트인데 데카르트가 외부세계를 긍정했다고?

데카르트 철학을 이해하기에 성찰이 더 나은건 맞는데 일반적으로 방법서설은 매우 쉬운 책에 속하고, 나같은 경우에도 아무리 길게 정독해도 한시간안에는 무조건 읽어서 물어본거임

정신입문규칙까지 다 합쳐둔 완역본도 진짜 아무리 길게잡아도 하루안에는 끝나는데 정말로 그거라도 읽어본적 있음?

그리고 나는 데카르트 철학이 (실제로는 그랬지만) 유물론, 과학주의, 기술만능주의을 야기했다고 한적도 없음. “신존재논증”자체의 신앙적 무오성을 비판한거임.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신존재논증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거지

객관적으로 핀트를 잘못잡음. 논리학으로 보면 논점일탈의 오류려나 ㅋㅋ 사실 비형식적 오류 자체가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임 자연주의의 오류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신존재논증”의 예시로 데카르트를 데리고 왔는데 “데카르트가 아무튼 외부세계를 긍정헀으니 니말은 틀렸다” 이게 합당한 반론임?

그래서 논점을 지켜서 a와 b에 제대로된 답변을 기대하고있겠음.

“니가 아무리 자유주의에서 이성을 빼고 공리주의를 빼서 취사선택을 하더라도 그중에서 남아잇는 설계주의적 관점조차도 진화론적관점과 양립이 불가능하다는거야. 절대적 도덕이 있기때문에 신이 존재하고, 이땅에 실재하는 모든것이 신이 창조했고, 신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창조론이랑 아예 목적과 의도를 배제하고 유기체의 질서와 복잡성을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로써 설명하려는 진화론적 합리주의를 동일선상에 놓는건 말이 안됨. 단지 전통을 옹호한다고 둘이 같은거임?

  • 이것도 답변이 없었음. 진화론적 합리주의와 보수주의가 진짜로 같다고 생각함?

4번쨰 질문도 하겠음. 3번질문에 대한 추가질문인데, 이러한 내 주장을 니가 파훼한다면 B의 주장인 자유지상주의도 전부 틀렸다고 납득하겠음. (그들의 연역적 공리체계의 사상적 기초를 니가 부정하는데에 성공했다고 봐도 되겠음.)

  1. Correctness Principle를 만족하는 일련의 논리체계에서의, -이때 CP를 충족시키는 논리체계의 갯수에 대한 관점도 선행되어야함- 다원론적 관점과 양진주의적 논리적 다원론을 충족시키는 자연언어-형식언어적 차원에 종속하여 recursive mapping을 수행하고, topic neutral적인 논리학의 성격에서 logical constant의 introduction rules을 정의하셈. 따라서 자칫 형이상학적 입장의 차이로 정리되는 이러한 다원론-논의에서 니 지금까지의 발화에 모순되지 않는 니 입장을 말해주셈 그러면 YHWH을 향한 나의 신앙적 위치와, 한낯 경험적 존재자의 차원에 종속된 나의 ens per se- 관점에 대해서 디오니시오스, 크리소스토무스의 신명론적 신학도 전부 부정되겠네. 같은 신앙의 길을 걷는 너한테 내 신앙적 입장을 물어보고 싶음.

H: ㄴㄴ 갑자기 논지 이탈하려 하지 마시고요.

데카르트를 외부세계 회의론이라고 떠드는 건 ㄹㅇ 개멍청한 새끼들한테 배운 거임 ㅋㅋㅋㅋㅋㅋㅋㅋ뭐 데카르트 성찰 초반 몇페이지만 찌끄려 보고 말았다면 그렇게 떠들 수 있다고는 봄. 데카르트는 비로소 신이 있기에 회의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고 보는 게 맞음. 한 시간 안에 읽을 수 있으면 성찰 지금이라도 완독해서 와봐라.

그리고 신이 있는 걸 있다고 얘기하는 게 도대체 왜 “신앙적 무오성” ㅇㅈㄹ 떨 일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웃기네

내가 데카르트 소환하는 게 논점 이탈하거나 권위에 호소하는 것 같냐? 아니 그래서 내가 묻지 않았냐 ㅋㅋㅋㅋㅋㅋㅋㅋ “생각하는 나는 도대체 왜 존재함?”

이해 못하겠으면 이해시켜 드림. 그리고 니가 저 세 학자를 파편화된 개인에 원인제공을 한 듯 써놓은 것도 팩튼데? 니가 언급한 그 “코기토에 다다르는 결과”로부터 다시 필연적으로 신을 찾게 됐는데 무슨 문제 라도?

민주은: 사실 논점일탈이 아니고 니가 무시했던 3번쨰 질문이랑 생략한 (삭제한) 4번째 질문을 재질문한거임. 즉 어떠한 원인(신)에는 적어도 그 원인에 의해 야기된 만큼의 존재(외부세계 - 인간)가 부가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그런식으로 해석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ㅇㅇ 사실은 근본적인 자기 확실성과 마찬가지로 신의 확실성이 인간에게 귀속된다는 의미임

이걸 외부세계 긍정이라고 해석한다면 보편적인 학계랑 상당히 동떨어진 입장임. (니가 맨날 부르짖는 유물론 좌파학계랑 상관 없음. 정치적, 정치철학적 관계는 이미 철학 학계에선 의미 없고, 그러한 입장의 기반을 다루는게 철학임)

H: 그런 수사적 표현이 결론이라면 오히려 그 어떤 인간도 신이 존재함을 부정하지 못해야겠다는 거네?

(신이 존재함을 부정해야한다고 말한적이 없다. 허수아비의 오류다. 난 신을 믿는다.)

민주은: 맨처음에 언급한 DCT, 부정철학이 뭔지 모름? 넌 내 논지도 이해 못하고있음

H: 도대체 어떤 학계를 보고 오신 건지 모르겠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못 믿겠으면 그 잘난 속독력으로 성찰 읽고 오시라니까요?

민주은: 난 신존재논증이 신앙적으로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신이 없다고는 절대 생각 안함. 모태신앙임 ㅇㅇ

H: 하나님은 인간에게 일반은총으로 스스로 살아계심과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계시해 알리셨음.

(갑자기?)

민주은: 도대체 71페이지, 65페이지책을 아무리 길어도 한시간안에 읽는게 니입장에선 속독임?

H: 그럼 제발 10분이라도 줄테니 평범하게 읽고 오소

따라서 인간의 양심이 부분적으로 살아있는 한 양심있는 자들이라면 당연히 신이 존재한다는 것과 창조주가 계심을 깨달아 알아야만 함.

민주은: 아마 디오니시오스, 크리소스토무스의 신학을 네번째 언급할텐데 내가 이사람들이랑 신학적 관점이 일치한다고도 했고, 근데도 넌 이해 못하고 갑자기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비난하는건지?

H: 넌 일반은총을 부정함?

(??? 무슨 맥락에서 나온 말ㅇ니지 모르겟다. 아무튼 저렇게 보냈다,)

민주은: 지금까지 나랑 헀던 4가지 토론 전부 읽고오셈. 내가 신을 부정하거나 일반은총을 부정한적이 있기야함? 처음부터 내가 신앙론자라고 언급하지 않았나? 도대체 누굴 비판하는거임? 같은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형제로써 실망스러움.

H: 그렇다면 왜 신이 있음을 알게 된 자들을 “신앙적 무오성”이라며 비난함? 되게 웃길뿐임

넌 지금 하나님의 일반은총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알게 된 자연인들을 비난하는 것에 불과함

민주은: 내가 부정신학, DCT적 관점을 언급했잖움. 난 한국어 역본을 잘 안읽어서 잘 모르겠는데 아마 한국어론 신명론일거 ㅇㅇ 내가 신명론이 내 입장이라고 처음부터 말한 요지를 모르겠음?

H: 물론 나도 계속 강조했듯 하나님의 살아계심만을 알고선 전혀 충분치 않다고 얘기해왔음. 이게 특별은총의 필요성이고.

(특별은총이 왜 나올까,)

민주은: 부정신학과 DCT적 관점을 채택하지 않은 자들을 신앙적 관점에서 비판하는데 너는 이게 “신께서 계심을 목도한 자들”을 비난하는거로 보임? 이건 유신진화론을 비판한다고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비난한다고 생각하는거랑 똑같은거임 ㅇㅇ 그리고 니가 “논리학을 몰라서” 회피한 3번질문과, 추가적인 4번질문을 재질문한것에 불과한 질문이 과연 논점이탈임?

  1. Correctness Principle를 만족하는 일련의 논리체계에서의, -이때 CP를 충족시키는 논리체계의 갯수에 대한 관점도 선행되어야함- 다원론적 관점과 양진주의적 논리적 다원론을 충족시키는 자연언어-형식언어적 차원에 종속하여 recursive mapping을 수행하고, topic neutral적인 논리학의 성격에서 logical constant의 introduction rules을 정의하셈. 따라서 자칫 형이상학적 입장의 차이로 정리되는 이러한 다원론-논의에서 니 지금까지의 발화에 모순되지 않는 니 입장을 말해주셈

논점이탈 아니니까 유신론적 양진주의인 니 관점을 말해주셈 ㅇㅇ (아펠의 자기파괴적 화행, APoA관련해서)

H: 난 신명론자가 아님. 내가 왜 신명론자임?

(??? 쟤보고 신명론자라고 한 적이 없다. 내가 신명론자다.)

민주은:

내가 신명론자라는데 왜 니가 신명론자가 됨? 니가 4번질문을 회피하거나, 계속 이에대한 독해를 회피한다면 나도 이 토론을 그만두겠음. ㅇㅇ 내가 신명론이 내입장이라고” 이게 니가 신명론자라고 한거라고 읽힘? 솔직히 더이상의 이런 너의 오독이 지속되면 상대입장에서도 굉장히 피곤함. 그래서 장문으로 4번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던지 신은 논리법칙에 초월적이면서 deicide적 세상의 사상적 포문이 된 논리법칙- “종속”적 신존재논증이 신앙적으로, 논리적으로 정당하냐 라는 대답을 따로 쓰셈 ㅇㅇ

H: ㅇㅋ 이제 니가 신명론자인 거 알겠고 신명론은 무한퇴행을 논파하지 못한다는 면에서 틀렸음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모르겠다.)

민주은: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이 그게 아니라는 말 아닌가? 4번질문에 대한 대답, 재질문도 필요하고 애초에 지금까지의 토론 내용을 숙지할 필요성이 있음. 그러면 4번질문에 대해서 너도 대답할수 있을거임. 지금까지 니가 내말 인용하면서 이해조차 못한채 완전히 다른 내용을 쉐복질한거만 한두번이 아님. 부디 혼자서 지금까지 내용을 다시 읽어보고, 니가 세번이나 회피한 3, 4번질문에 대한 대답을 기대하겠음.

H: 일단 니가 신명론자라는 부분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맘에 들긴 하나 도덕이 실재하는 이유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 엄밀함이 필요해 보임.

도덕이 실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명령해서라고 표현하기보다 하나님 그 자체가 진실, 선, 공의이시기 때문이라고 표현해야 정확함.

(하나님 그 자체가 진실, 선, 공의시라는 신학적 관점이 신명론이다… 쉽게 말하자면 신명론이 맞다면서 신명론이 틀렷다고 하는거다.)

신의 “명령”이라는 수단으로써 도덕을 정당화하면 다시 신이 그렇게 명령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생김. 이게 오히려 너가 자꾸 물고 늘어지던 괴델의 증명에서 지적하는 동일한 오류를 너도 범하는 것임. 신의 속성에 대해 정의가 안 된 채로 명령에 의존하는 것이니. (난 괴델이 positive를 가장 총체적 바깥의 개념으로서 실재하는 속성으로 정의하며 오류를 피했다고 봄)

그래서 진실과 선과 도덕의 실재에 대한 무한퇴행을 막는 최종 결론은 신명론 그 이전에 신 그 자체가 진실하며 선하며 공의롭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함.

한편 너가 이 신명론의 관점에 서서 내 주장이 문제가 됐다고 여기는 건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나 다른 유신진화론자 같이 이들이 “계시”가 아닌 “이성”을 통해 발명한 도덕인데도 내가 이를 옹호하는 듯 보여서라고 보여짐. 어느 정도 옹호하는 건 맞으나 이 주장은 틀렸음. (난 유신진화론을 극혐함)

내가 옹호하는 이유는 이러함. 저들의 발명은 발견이라고 표현해야 더 정확하고 이 발견은 하나님이 일반은총으로서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창조주 되심과 인간 기본 도덕을 온 우주와 인간의 마음에 일반계시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 이 또한 계시라는 것이고 난 성경에 나와있는 이 일반계시를 옹호함.

하지만 난 동시에 ”일반계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도 말함. 성경에 나와있듯 모든 인간이 죄인이며 인간의 양심이 더럽혀 있어 이 일반계시가 묻혀있는 경우도 많고, 또 이 일반계시, 인간 기본 도덕을 안다는 것만으로는 영혼의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임.

신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이 스스로의 존재를 온 우주 만물에 밝히 드러내신 분이라는 점에 기인하므로 신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 자체를 비판하는 피에르게이는 틀렸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존재 증명(사실상 발견)을 인간이 할 수 있게 허락하셨다는 것이고 이는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신이 없다고는 “핑계치 못하게” 하려 하심임.

따라서 너의 공격의 방향은 신이 있음을 발견하려는 이들을 향할 것이 아니라, 그 발견한 신의 속성을 같잖은 이성으로 함부로 재단하는 이들 (신은 비인격적이다, 신은 대진화를 허락한다, 신은 다원주의적이다 등)을 향해야 함.

민주은:

  1. 유신진화론은 논증의 과정에서의 유사성으로 너의 논리적 오류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논증을 가져온것임. 내 주장, 니 주장이랑 관련 없음 도대체 유신진화론을 극혐하는게 갑자기 왜나옴?

  2. 신명론이 한자 뜻 그대로 “신의명령”이라서 따라야 한다는 1차원적인 차원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있는건지 궁금함.

우선, 학계의 신명론에 대한 주된 비판은 인간의 도덕적 직관에 대한 신명론의 불일치성에 있음. 이건 생략하고

두번째로는 Deus ex machina에 불과하다는 건데, 이것도 니입장에선 납득이 불가능하니 생략함.

그리고 “신의 “명령”이라는 수단으로써 도덕을 정당화하면 다시 신이 그렇게 명령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생김.”은
도대체 어떤 감각소여를 거쳐서 나온거임?

“신의 속성에 대해 정의가 안된채로 명령에 의존하는 것이니.”
도대체 신의 속성에 대해 정의할수 있는 사람이 있음? 애초에 경험”초월”적 존재자인 신을 경험적으로 재단할수 있다는거임? 인간의 입장에서, 할수있는건 단지 성경의 말씀과, 올바른 가치를 판별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길 기도하고, 그 하나님의 능력과 성경을 따라 하나님의 가치대로 행동하면서, 이땅에 전파하는거임.

“그래서 진실과 선과 도덕의 실재에 대한 무한퇴행을 막는 최종 결론은 신명론 그 이전에 신 그 자체가 진실하며 선하며 공의롭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함.”
신의 명령은 행위의 도덕성을 담보하고, 신적 권능의 객관적 가치 그 자체를 규정짓는 이상, 신의 명령에 대해서 인간이 판단할 틈이 없다는게 신명론임. 당연하게도 객관적 도덕가치에 대한 형이상학적 설명과 비우연적인 도덕가치의 창발 해명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신-종속적 도덕적 기준에 대한 원인과 당위에 대한 해명이 이뤄지는거임. 신의 명령이 도덕기준 그 자체라는건 -선악 개념의 창조는 즉 선악의 기준이 신 자신에게 있다는 의미임 ㅇㅇ 신의 명령이 그 자체로 선하다면, 신명에 부합하는 도덕적인 것과 신명에 부합하지 않는 비도덕적인 것으로 나뉠뿐임. 그런 맥락에서 “신의 “명령”이라는 수단으로써 도덕을 정당화하면 다시 신이 그렇게 명령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생김.”은 말이 안됨. 신이 그렇게 명령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을수가 없음. 신의 명령 그 자체가 도덕이고, 신의 존재 자체가 도덕이라는데 신명론애서 신에게서 독립적인, 신의 명령에서 독립적인 도덕이 존재한다는거임?

그러니까 니 입장이 결과적으론 신명론의 정의를 다시 한번 읊은거야 ㅇㅇ

일반계시로 충분하지 않다는건 나도 이미 충분히 말했던 내용이고, 그 내용을 니가 다시 말한다고 내가 또 언급할 이유는 없겠음 ㅇㅇ 행동이 우선임

“난 게다가 신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 자체를 비판하는”이라고 말한젓 없음. 언제까지나 니가 말한대로 “논리법칙에 초월적인”신이 논리법칙을 준행하며 논리법칙 안에서 증명된다는 시도 자체가, 신을 언어속에 한정시키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그러한 시도가 잘못되었다는거임

둘다 아직도 니가 오독을 한거지 ㅇㅇ

내가 위에서 (댓글 옮기기 전에) 신은 incomprehensible, inexpressible, indescribable 이라고 했던 만큼, 신은 언어속에 한정될수 없음.

그러한 관점에서 (괴델같은) “논리적 신 존재 증명”이 신앙적으로 잘못되었단거임 ㅇㅇ 난 신의 존재를 긍정(증명)하는 모든 행위를 부정한적 없음

더 나아가, 그래서 내가 신을 언어속에 한정시키려는 시도가 유물론, 과학만능주의, 개인주의를 야기했다고 한거임.

(그게 부정신학이다. 아마도 이렇게 말하니까 드디어 이해한것같다.)

플라톤이 신에 대한 증명을 하지 않은 이유가 이거임 ㅇㅇ 신을 언어속에 한정짓지 않은 대표적인 철학자로 (6번째 언급하는) 디오니시오스와 크리소스토무스를 언급한거임 그래서 니 답변은 허수아비의 오류인 셈임. 그러니까 신은 “무엇”이라는 주장 대신 “무엇이 아니다”라는 주장으로 “무한한” 신을 “유한한”언어에 담아야 한다는 정신을 담은게 위에서 언급한 (히브리신론에서의) YHWH임. (테트라그라마톤) 그래서 인간의 이성, 인간의 언어, 인간의 사고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그 무엇의 최정상에 신은 군림하고 있고, 따라서 신은 내가 자주 사용하는 경험초월적존재자(transcendent entity), 혹은 ens per se로 묘사된거임. ens per se도 위에서 아마도 두번 언급했음 이렇게 신은 “부정적”으로 묘사되는거임. (negative 아닌건 니가 이해만 해도 알거라고 믿음.) 이러한 부정신학은 (언어에 신을 종속시키지 않으려는 시도는) 니가 알다싶이 신의 본질을 고려했을때 타당하다고 난 생각함.

(negative가 아닌건 이해만 해도 알거라고 믿엇다 했는데, 진짜 negative로 이해했다.)

이렇게 신은 “부정적”으로 묘사되는거임. (negative 아닌건 니가 이해만 해도 알거라고 믿음.) 이러한 부정신학은 (언어에 신을 종속시키지 않으려는 시도는) 니가 알다싶이 신의 본질을 고려했을때 타당하다고 난 생각함. 그렇지만 이러한 부정신학에 대한 -인본주의와 합리주의가 도래하며-근대적 도전이 바로 니가 언급한 괴델의 신존재논증, 데카르트 (신의 초월성은 인정하지만 신을 언어로써 한정지음, 즉 논증되는 무언가로 격하시키고 치부함.) 의 철학임 ㅇㅇ

추가로 니가 신이 논리법칙에 비종솟적이란걸 인정한걸 먼저 언긎하겠는데, 만약 신이 논리법칙에 종속적이라면 신은 논리법칙에 위배되는 그 어떤 우주도 만들지 못함 ㅇㅇ 하지만 물리법칙조차 우주에 종속적이라면 논리법칙또안 우주에 종속적이지 않을 이유가 있음? 그렇지만 논리법칙이 우주에 독립적이라면 그건 신의 전지전능성을 침해하는거임. 따라서 신에게 질서가 중요하다는 점은 사실일 수 있지만 그 질서가 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알 수 없고, 우리는 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관해 침묵할 수 밖에 없음. 신존재논증은 이러한 입장과 위배돠는거임.

추가로 (두번째) 비표준 논리에선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적 논리법칙이 부정되고 있음. 그래서 내가논리법칙이 형식논리적인것인가 형이상학적 원리로써 기능하는것인가? 라고 물엇던거림. 논리법칙은 공리계와 마찬가지로 편의에 따라 선택적으로 가정될 수 있지만. 문제는 이러한 형식언어에서의 원리가 형이상학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 라는거임 만약 논리법칙이 위배되는 실제 사례를 찾을 수 있다면 논리법칙의 보편성은 무너짐. 예를들어 2번 링크와 이 주제에 관련된 3,4번 질문에 해당하는 형이상학적 양진주의에 따르면 현실에서 참인 모순은 존재함. 논리체계중 하나인 형이상학적 양진주의가 참이라면, 괴델의 신존재논증 같은 신을 언어속에 가두려는 논리적 시도에서, 신의 본성 자체가 바뀌는거임. 그런 맥락에서 4번 질문에 대답이 필요함. (신을 언어속에 한정시키려는 시도와 형식논리적 논리법칙에 관한 모순에 관한 질문임 ㅇㅇ) 물론 형이상학적 양진주의를 부정할수도 있겠는데 1. 우리에게 그러한것을 부정할 이유가 주어지지 않음. (4번질문에 대한 정당한 대답을 하면, 니가 그 이유를 타당하게 제시한거임.)

마지막으로 위에서 말한 신명론 설명에 좀 더 명쾌한 논리실험이 생각나서 짧게 쓰겠음
만약 선악의 기준을 규정짓는 것이 신 자신이라면, ‘그 기준은 옳지 않다’는 주장은 선악적 기준으로서의 신을 거부할 때만 가능함. 하지만 그러한선악적 기준으로서의 신을 거부한다면 위 주장은 애초에 선악적 기준으로서의 신을 겨냥하는 비판이 아니게 됨. 허수아비의 오류인거임. (도덕이 실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명령해서라고 표현하기보다 하나님 그 자체가 진실, 선, 공의이시기 때문이라고 표현해야 정확함.) 도 같은 맥락으로 허수아비의오류임.

그리고 이제 넌 연속적인 논리과정속에서, 필연적인 흐름으로 도달한 4번째 질뭉에 대한 대답을 할 차례임 ㅇㅇ

  1. Correctness Principle를 만족하는 일련의 논리체계에서의, -이때 CP를 충족시키는 논리체계의 갯수에 대한 관점도 선행되어야함- 다원론적 관점과 양진주의적 논리적 다원론을 충족시키는 자연언어-형식언어적 차원에 종속하여 recursive mapping을 수행하고, topic neutral적인 논리학의 성격에서 logical constant의 introduction rules을 정의하셈. 따라서 자칫 형이상학적 입장의 차이로 정리되는 이러한 다원론-논의에서 니 지금까지의 발화에 모순되지 않는 니 입장을 말해주셈

이쯤 설명했으면 어떤 맥락에서, 의미로 4번째 질문이 나온지 알거임. 타당한 논리적 확장이고, 신 존재의 긍정, 신존재논증의 신앙적 무오성, 자유지상주의의 APoA의 연역적 기반인 자기파괴적 화행에 대한 기초적인 논의, 진화론적 합리주의와 보수주의의 동일성 전부를 꿰뚫는 질문이라고 생각함.

C: 니가 이긴듯. 애초에 논증법 이런 걸로 전공자 이기기 힘듦. 주딱게이랑 니 논리의 차이는 초등학생 수학이랑 대학교 수학 차인거 같다

(난 중졸 자퇴생이다!)

C: 신존재 증명은 불가능하다고 볾

이미 신이라는 개념 안에 인간의 인지를 넘어서는 초월성이 존재하고 (즉 형이상학적인 것들 중 최고차원)
인간의 인지는 경험세계를 넘어설 수 없음.
그렇다면 신은 전지전능하기에 인간의 경험세계 내에서 신의 존재를 체험할 수 있게 할 수 있지 않느냔 질문이 나옴
물론 신을 부정하는 입장도 긍정하는 입장도 신의 개념상 그럴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함.
그러면 신이 경험가능한 상태로 자기 존재를 현시했다는 경험 증거가 필요한데 그건 아직까지 발견된 적이 없음
창조과학을 예로 들텐데 그건 이미 과학철학적으로도 과학이 아니고 학문적으론 쓰레기에 가깝다
또한 신이 자기 존재를 현시하는 건 신학적으로도 문제된다.
왜냐면 예수는 신의 존재를 믿으라고 했지 알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
이성적으로 신의 존재가 반박불가능하게 인정된다면 신의 존재를 믿는 건 성립할 수가 없음
왜냐면 눈 앞에 사과가 있다는 건 단순 앎이지 믿음이 아니기 때문
물론 난 신이 있다고 믿을 뿐 이성적으로 신존재를 확정할 수도,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여태까지 쓴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 이성적 학문의 경계에 대한 칸트의 고찰임
신의 존재를 밝히거나 부정하려는 시도가 전혀 의미 없는 건 아니지만 엄밀한 경험적 차원에서 이성적일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자..

D: 신을 증명하는 건 신뿐임.
생각해보니 인간이 신을 증명하려 드는것부터 이미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것이지

C: ㅇㅇ맞음 신을 인간이란 한계 안에 가두려고 하는 신성모독이기도 함

D: 다만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그냥 단순한 신의 존재를 믿고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함.
신의 존재만 믿고 병1신짓하면 우리는 그사람을 ‘독실한 크리스쳔’ 이라고 칭하진 않으니까.
이와 같이 ,’신의 존재는 기본적으로 믿으며, 교리에 합당하게 행동하는 자’를 ‘신을 믿는 자’라고 칭함.
신을 믿는 자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불경하여 그런 시도를 할 리가 없지만,설령 ‘신을 믿는 자’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데 성공하였다 가정하더라도 이런 단순히 ‘신을 안다’고 하는 것은 좀 이상함.
신을 믿는다는 표현은 존재 자체에 대한 신뢰가 아닌,신의 존재와 교리에 대한 복종을 인정하는 더 복합적인 표현임.

민주은: C나 D 둘다 나랑 비슷한 관점을 갖고있는듯, 개인적으로 난 신에게 목숨을 빚진 사람임. 신께서 주신 일상은 정말 신비롭고, 기적적이엇음. 그래서 나도 한동안 논리적으로 신을 증명하려고 아등바등했는데

내가 논리로 어떻게 할수있는 존재가 아니더라.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이 그에게서 왔으니까 저절로 그 위대함을 느끼며 할말을 잃었음. 신은 언어로써 긍정할수도 없고, 부정할수도 없는 존재란걸 깨달음. 그냥 경험을 초월해서 이세상에 처음부터 존재했던 분이니까.

정말 죽은것과 다름없었던 내게 미래를 약속해주시고, 그 약속이 성취될수 있겠다는걸 깨닫고 나니까 매일매일 감사하고 기대가 되더라.

그때 깨달았음. 내 본질은 이 껍데기가 아니라 감히 언어로 표현될수 없는 그 엄숙하고 깊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함. 의미론적으로 영혼에 제일 가깝겠지.

그런 의미에서 신앙의 핵심은 감사함이라고 생각함.

어려운말로 정의할 수 없는 현존을 경험한 영혼은 더 이상 정태적 종교와 사회적 규범에 의존할 수 없음. 하나의 독립된 객체로써 존재하기 위해서 오롯이 스스로의 심층적 분출에만 의존하게 됨.

난 그게 신만이 자신의 원천이란걸 깨닫는 과정이라고 믿음.

C: 자기가 이성적인줄 아는 사람들이 무신론교에 빠지는 걸 보면 안타깝더라

H:

  1.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분의 존재를 드러내심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시 19:1-4)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 1:20)

성경에서도 드러나듯이 인간의 이성이 더럽혀진 양심에 가려지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 일반계시하신 그분 스스로의 존재를 인간은 “핑계하지 못하게” 알 수 있음. 그럼에도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들의 죄악으로 더럽혀졌기 때문이고,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합당함.

이 부분은 우리 둘다 이견이 없을 거라 봄.

H:

  1. 하나님의 일반계시는 특별계시를 위해 반드시 필요

노아의 홍수, 바벨탑, 소돔과 고모라 등의 사건들은 모두 인간이 스스로의 이성과 양심을 더럽혀 자연법도 저버렸기 때문임. 이 사건들의 공통된 특성은 하나님께서 구속사역의 보전을 위해 직접 심판으로 자연법을 회복시키셨다는 것임. 인류의 자연법적 타락은 복음의 전파를 불가능하게 함. 쉽게 말해 맹목적 살인을 정당화하며 인간 기본 도덕마저 준행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복음이 전혀 전파되지 않는다는 것. 일반계시는 특별계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

이러한 1, 2의 이유로 하나님의 구속사에 참여된 모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일반계시와 자연법 또한 중시해야 할 것이고,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복음의 전파 뿐만이 아닌 자연법의 보전에도 힘 써야 할 의무가 있음.

H:

  1. 신명론에 대해서는 난 플라톤이 언급한 신명론에서처럼 신명론 그 이전에 하나님이 곧 진실, 선, 공의 그 자체여야 한다는 대전제를 제시한 것이고 이에 대해서는 상호 이견이 없으니 나도 신명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음. 그러나 하나님이 진실, 선, 공의 그 자체라는 속성 정의마저 부정신학 관점으로 부정하려는 시도는 이해가 안 감. 부정신학은 하나님은 완전하시다고,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등을 얘기하는 것마저 부정하라고 한 게 아님.

H:

  1. 데카르트와 괴델의 함의는 하나님이 창조한 질서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했다는 것이 중요함.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객관적 실재로 창조하셨고, 그 객관에 의하여 창조주를 발견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음. 괴델의 증명은 신 “존재” 증명이지 부정신학을 넘어서 신의 어떠함을 증명하고자 함이 아님. 너가 말하는 그 언어화 문제는 하나님이 있음을 표현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 언어화와 부정신학을 거기까지 적용시키면 우리가 “신은 존재한다”고 긍정언어로 표현하는 것조차 안 됨?

H:

  1. 너가 오해하고 있는 게 코기토는 우리의 신앙과 위배되지 않음. 근대수학과 과학은 철저히 데카르트에 영향을 받았음. 외부에 객관적 실체가 존재하고 이 객관성을 전제로 외부의 실체를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것으로부터 근대수학, 과학은 탄생함. 객관적 외부 실체와 이를 인식할 수 있는 객관적 자아 간 객관적 상호작용은 이를 조정한 객관적 신이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함. 이를 견고한 인식론이라고도 부름. 그리고 현대철학 사조가 이 코기토를 해체하는 데에 몰두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코기토의 해체가 파편화된 개인을 부추기는 것이고 너의 주장은 틀렸음.

H: 그외 양진주의나 마지막 질문은 뭔 소린지 모르겠으니 답변을 원한다면 설명 바람.

민주은: 솔직히 내 4번 문제를 독해조차 못할거라곤 예상 못했는데, 위에 보니까 무삭제게이가 비슷한 맥락에서 글을 써둠 ㅇㅇ 그거 읽고 이러한 흐름을 이해하고, 또 철학적, 논리적 소양을 더 길러서 다시 토론을 해주길 바람.

민주은: 1, 2번은 이미 내가 친한 목사님과 수도없이 말한 말이고, 결정적으로 주제와 관련없음. 장광설을 자제하셈. 그리고 3번은 내가 이미 하나님이 진실, 선, 공의 그 자체라고 하는게 신명론이라고 말했장ㅎ음. 허수아비의 오류라고 말했는데 또 완전히 같은 논증을 저지른거임. 4번은 논리법칙과 신존재에 관한 내 말을 이해만 해도 할수없는말임. 데카르트 관련된 5번은 이미 글 옮기기 전에 말해둔 내용임.

민주은: 외려 니가 기독교컨셉을 잡은 몇몇에 비해서 신앙적으로 건전한것 같음. 부디 이런 노선을 이 삶에서 유지하고, 주변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베풀어주셈.

민주은: 니 신앙을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써 응원하겠음.

H: 그래 너도 내가 여기서 토론하며 본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훌륭한 듯 고맙다 나도 너의 신앙을 응원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