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S.밀이 주장하는 자연의 제일성은 항상성 테제(Uniformity Principle, UP)라고도 하는데,
이는 결국 미래가 과거와 유사할 것이라는 원리라고 볼 수 있다.
허나 흄이 지적하듯 UP는 순환적이다. 귀납을 근거짓기 위해선 UP를 가정해야 하는데,
UP가 참으로 가정되는 유일한 근거는 이제까지 UP가 참이었다는 점뿐이다.
즉 과거에UP가 참이었기에 미래에도 UP가 참이어야 한다는 논증이 성립하기 위해
우리는 처음부터UP를 참으로 간주해야만 한다.
우선 용어 정리를 하자면 귀납은 정당성이 아니라 설득력을 기준으로 평가된다.
귀납논증은 그 개연성에 따라 설득력이 있거나(cogent),설득력이 없는(non-cogent)논증으로 나뉜다.
귀납은 연역만큼의 논리적 필연성을 갖지는 않기 때문에 연역적인 의미에서라면
UP는 물론이고 모든 귀납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문제시해야 하는 사안은 UP의 논증적 설득력일 것이다.
UP에 대한 귀납논증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P1.시점t1에 대하여, UP가 참이었다.
P2.시점t2에 대하여, UP가 참이었다.
…
Pn.시점tn에 대하여, UP가 참이었다.
Q1.그러므로 시점tn+1에도UP가 참일 것이다.
결론Q1을 사용해UP를 보다 엄밀하게 일반화하자면 다음과 같다:
Q1.시점tn+1에도UP가 참일 것이다.
Q2.시점tn+2에도UP가 참일 것이다.
…
Qn.임의의 자연수k에 대해, 시점tn+k에도UP가 참일 것이다.
R.도메인(k∈R)에 해당하는 시점tn+k에서UP는 항상 참이다.
명제R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결국 귀납논증을 통해 도출된 명제에 불과하다.
즉UP가 참임을 근거 짓기 위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논거는 이제까지UP가 참이었다는 점밖에는 없다.
허나UP가 논리적 오류에 입각해 있는 한 자연과학은 귀납이라는 허술한 토대 위에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UP에 호소하지 않으면서UP를 옹호해야 하는데,
내가 보기엔(1)실용주의적 공리화(pragmatic axiomatization)나
(2) UP-부정 논변이 불합리한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이는 귀류법(argumentum ad absurdum)정도가 최선이다.
전자의 전략을 택하는 경우, 우리는 단순히UP의 도구적 유용성을 토대로 UP를 공리화시킬 수 있다.
아시다시피 자연과학이 기능하기 위해선 UP에 근거한 귀납법이 필요하다.
분명UP는 논점선취의 오류에 입각해 있지만,
UP를 토대로 하고 있는 자연과학은 셀라스가 지적하듯 꽤나 유용한/정밀한 예측력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UP를 공리화하는 것이 그 반대보다 도구적일뿐더러 인식론적 합리성을 고려한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사실상 모든 자연법칙과 물리법칙은UP에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UP는 경험과학의 실증적 방법론에서 가정되어야만 하는 필수불가결한 제1원리와도 같다
이러한 셀라스적 논변의 연장선에서 라이엔바흐의 스탠스에 입각한 귀류법이 전개될 수 있다.
인간은UP가 전제된4차원의 물리세계에 종속되어 있다.
우리는UP없이는 그 어떤 일상생활도 할 수 없다.
예컨대 어제의D와 오늘의D가 같다는 믿음이 있기에
나는 나에게 주어진 과제들을 하는 것이고,중력의 법칙이 변치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안심하고 걸어 다닐 수 있다.
UP가 부정된 세계에서는 자연으로부터 그 어떠한 제일성도 기대할 수 없다.
당장 태양이5초 후 폭발하고 블랙홀이 되어4.22광년 떨어진 프록시마 센타우리를 향해 초광속으로 이동하다
한줌의 벤잘코늄 클로라이드를 품은 번데기로 변태해도 이상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이다.
나에게 있는 5만원권 신사임당은 내일 아침부터 1000원권 퇴계 이황으로 바뀔 수 있고
롤스로이스 팬텀SWB는3시간 뒤부터 캐딜락CT6로 바뀔 수 있다.
즉 미래가 과거와의 유사성을 잃는 순간 과학과 경제와 사회는 무너진다.
허나 이는 불합리한 결론이므로,우리는UP를 가정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방금 고안한 이 논변이 본의 아니게 셀라스와 라이엔바흐의 입장을 대변하는 셈이 되었지만,
내가 보기에도 실질적으로 실용주의적 공리화와 귀류법 외에UP를 근거지을 수 있는 마땅한 답변은 찾기 어려워 보인다.
뭐 귀납논증에 대한 흄의 비판이 워낙 강력한 점도 있고,
뉴턴이 자못 고생했을 정도로 자연과학에 치명적인 비판이다 보니,
자연과학-내적으로는UP에 관하여 순환논증 이상의 것을 보여주기란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귀납적 사고를 인간의 본성적 또는 기본적인 사고방식으로 볼 수 있을까?
과학연구는 물론이고 인간관계나 의식주를 해결할 때조차도 귀납이 사용되는데,
귀납은 어쩌면 인간의 기본적인 사고 패턴 중 하나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귀납적 사고는 인간 이성의 근본적인 작동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지만,
연역적 사고 역시 빼놓을 수 없어 보인다.연역은 일반에서 특수를 도출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세네카가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가 언젠가는 사망하리라는 점을 추론가능하다.
세네카는 사람이고, 사람은 언젠간 죽기 때문에 세네카가『쿠오바디스』의 페트로니우스와 흡사한 방식으로 자살했다는 점은
후험적 지식의 영역이지만 세네카가 필멸자라는 점은 선험적 지식의 영역이다.
이러한 전제로부터 세네카의 죽음을 추론하는 것이 연역추론이다.
다만 일반에서 특수를 도출하기 위해 우리는 처음부터 일반을 가정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기에 일반을 근거 짓기 위한 귀납이 필요해진다.
사람이 죽는다는 일반적 명제 그 자체는 무수히 많은 관찰결과를 통해 근거지어진 귀납적 결론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귀납의generalizability는 UP-의존적인 속성이기 때문에 귀납은 다시금 UP라는 일반명제에 의존하게 된다.
이때 UP는UP를 확증하는 개별 사례들을 통해 귀납되는 테제이므로,
인과관계라는 일반법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과원리,즉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다는 원리는 연역의 결과가 아니라 귀납의 결과에 가깝다.
인과원리에 대한 정당화는 결국 다음과 같은 논증적 구조를 지니기 때문이다:
P1.시점t1에 발생한 원인이 그에 상응하는 시점t2의 결과를 야기했다.
P2.시점t2에 발생한 원인이 그에 상응하는 시점t3의 결과를 야기했다.
…
Pn.시점tn에 발생한 원인이 그에 상응하는 시점tn+1의 결과를 야기했다.
C.그러므로 모든 결과에는 그에 상응하는 원인이 있다.
이런 식으로 보자면 귀납은 연역에 우선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순환논증도 타당한 연역논증이라는 문제가 있다.
분석명제를 생각해보면 편할 것 같은데, 위 논증이 가능하기 위해서
우리는‘원인이 원인이라는 점’과‘결과가 결과라는 점’을 상정해야 한다.
예컨대 우리는 위 귀납논증에서 다음과 같은 가정들을 내려두고 있다:
1.P1과P2에서 발화되는‘원인’은 의미론적으로 동일하다.
2.P2와Pn에서 발화되는‘원인’은 의미론적으로 동일하다.
3.Pn과C에서 발화되는‘원인’은 의미론적으로 동일하다.
4.P1과C에서 발화되는‘원인’은 의미론적으로 동일하다.
5.P1과P2에서 발화되는‘결과’는 의미론적으로 동일하다.
6.P2와Pn에서 발화되는‘결과’는 의미론적으로 동일하다.
7.Pn과C에서 발화되는‘결과’는 의미론적으로 동일하다.
8.P1과C에서 발화되는‘결과’는 의미론적으로 동일하다.
9.시간은 존재한다.
10.임의의 자연수n에 대하여,시점tn-1은tn에 시간적으로 선행한다.
11.전제{P1, P2, …, Pn}의 연언은 결론C를 도출하는 데에 충분(sufficient)하다.
즉,위 논증은 형식적으로는 귀납의 양식을 갖고 있지만,
보다 엄밀히 따질 때 각각의 전제들 및 전제간의 관계는 연역적으로 얽혀(intertwined)있다.
물론 이러한 관계적 속성 역시 경험적으로 형성가능한 일종의 귀납법에 의존적이지 않는가 하는 지적이 가능하겠지만
모든 관계적 속성은 종국엔 논리법칙,예컨대 무모순율과 배중률 및 동일률 따위에 의존하는 속성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연역이 귀납에 우선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렇기에 인간 이성이 귀납적/연역적 사고를 혼용한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어느 쪽이 보다 근본적인 정신구조적 얼개에 해당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듯이 보인다.
다만,우리가 외부세계를 탐구할 때 일반을 근거짓기 위해서 귀납이 필요한만큼,
귀납적 사고(및 연역적 사고도 포함해서)는 일상생활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근본적인 정신 구조적 속성 중 하나로 봐야 되지 않는가?
흄은 비록 인과적 추론과 귀납을 습관의 결과로 이야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이 외부세계의 작동원리를 규명할 때는 우리는 결국 귀납적 방법을 거치면서 정립해 나간다.
그런데 흄의 경우에는 엄밀히 말하면 결국 자연주의적 세계관에서 귀납논증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닌가?
정확히는 우리가 귀납을 추론하는 습관의 기원이 자연과의 예정조화를 통해서 나타난 거라고 언급하면서
결국 우리의 습관은 자연적 경향성으로써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따르는 게 좋다는 방향으로 논지를 전개하는데 솔직히 한계가 있는 논증이 아닌가?
결국 현대 진화생물학에서 적응에 대해 설명하는 거랑 비슷하기도 하다.
아무튼 흄은 그렇게 설명하고 만족하고 넘어간 거 같은데 귀납에 대한 완전한 정당화나 결론은 현대까지도 나지 않앗다.
최근에는 카르납의 귀납논리학이나 베이즈주의적 접근 등등도 많이 언급되면서 논의된다.
하지만 역시 귀납은 지식의 축적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추론방식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위에서 연역논증에 대한 이야기를 한 이유는,좀 더 엄밀하게 보자면,
귀납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디까지를 인간 이성의 근본적인 속성이라는 것의 외연에 포함시킬 수 있는지 다소 모호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임(이하F-ness)”이라는 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른 답이 가능하기 때문인데,
가령F-ness는 다음과 같이 이분될 수 있다.
(F1)인간 이성의모든지적 기능을 가능케 하는 필수불가결한 추론방식
(F2)인간 이성의어떤지적 기능을 가능케 하는 필수불가결한 추론방식 정의
(F1)에서의 추론방식은 배타성(exclusivity)을 갖고,
정의(F2)에서의 추론방식은 포괄성(inclusivity)을 갖는다.
만약(F1)의 정의를 채택한다면,인간 이성을 통해 실행되는 모든 연산 작용은 특정한 추론방식,
예컨대 귀납법에 의존적이다.
이 경우 모든 연산 작용은 귀납법에 의존적이므로 연역법 또한 귀납법에 의존적이며,
모든 지식체계의 근원에는 귀납법이 자리 잡게 된다.
그러므로(F1)-해석 하에서의 귀납법은 일종의 메타-추론규칙으로 간주된다는 의미에서‘근본적’이다.
반면(F2)의 정의를 채택한다면 인간 이성은 적재적소에 알맞은 추론방식─즉 둘 이상의 추론방식─을 사용한다.
연역법과 귀납법은 양립가능한,때로는 중첩가능한 추론방식이라 보듯이. 이러한 경우 연역법은 귀납법과 동등한,그리고 동일한 의미에서 근본적인 추론방식으로 간주될 수 있다.
우리는 연역법과 귀납법의 위상을 둘 다 인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F2)의 해석을 따르고 있다.
앞서 제가 지적했듯이 귀납법과 연역법은 둘 다 일상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추론방식에 해당한다.
헌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인간 이성의 메커니즘을 대변하는 근본적인 추론방식의 집합을Σ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Σ의 원소는 몇 개이며, 우리는Σ의 원소에 대한exhaustive list를 구축하는 것이 가능할까?
예컨대 일상생활에 필수적이라는 점은 사실 귀추법과 귀류법에도 똑같이 적용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Σ의 원소에 귀납법과 연역법은 물론이고 귀추법과 귀류법 역시 추가해야 하는 것일까?
퍼스(Pierce)는 연역법과 귀납법 및 가추법 중 연역만이 완전한 추론방식이라고 생각했고,
귀납이 연역에 종속적이라고 주장했다.
(Pierce, Collected Papers 2 vols. Harvard University Press, 1958, p.807)
허나,범죄학 논문인『검사의 수사 논증과 추론의 구조 고찰:가추와 역행추론을 중심으로』(2016)에서
김대근 법학박사가 옳게 지적하듯, 귀납과 연역은 상호보완되는 추리법이므로 순환적이라는 한계가 있고,
보다 현실적인 추리방식은 가추법일 수 있다.그리고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근본적인 추론법의 범위를 계속해서 확장시킬 수 있다.
가령 귀납법은 전적으로 형이상학적 원리로서의 논리법칙(mLNC)에 의존적이다.즉,
(P)귀납법은 일상생활에 필수불가결하다.
는 주장의 정확한 의미는:
(P’) mLNC는 일상생활에 필수불가결하다.
는 것이다.만약 그렇다면 귀납이 인간의 근본적인 정신구조적 속성이라는 주장은 다양한 방식과 차원으로 분석될 여지가 있다.
귀납이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하다는 점은 사실이지만,이 사실 그 자체는 귀납만이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추론방식이라는 점까지 의미하지는 않는다.
결국 귀납법 외에도 인간에게 필요한/사용되는 추론방식이 있다면 귀납법의 위상이 흔들리지 않는지,
그리고 그렇다면 과연 귀납법이 가장 주요한 추론방식일 수 있는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요컨대 세 가지의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1)귀납의 정의 문제,
(2) F-ness의 정의 문제,
그리고
(3)추론방식 간의 위계문제.
사실 이러한 형식적인 차원의 문제를 제외하면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귀납은 학문체계 그 자체를 넘어 생명체의 생존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에,
귀납은 분명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그 무엇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귀납의 개연성은 연역의 확실성을 뛰어넘지 못하기에,
우리는 결국 귀납을 회의한 흄이 직접 제안한 실용주의적 논변으로 소급하지 않나 싶다.
귀납은 도박인 동시에 도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귀납이 도박인 이유는 그것이 연역적 필연성만큼의 확실성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박이 아닌 이유는UP가 부정될 가능성이 통계적으로 무의미(statisticallyinsignificant)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UP로부터 연역적 필연성을 기대할 수 없지만 동시에 UP가 단 한 번도 부정된 적이 없음을 알고 있다.
UP가 참일 확률이99퍼센트에 육박한다면 UP가 부정될 가능성을 이유로 UP를 부정하는 것은 불합리할 것이다.
이는 마치 30분 후에 좀비 아포칼립스가 시작될 가능성이 0이 아니라는 이유로 재산의 전부를 총기매매에 소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귀납이 도박이라는 지적은 연역을 기준으로 놓는다면 사실일 수 있지만 마냥 도박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성공확률이 높다는 문제도 있는 것 같다.
어떤 측면에서UP는 몬테카를로의 오류와 자연법칙적 일관성의 경계에 있는 원리라고도 볼 수 있다.
자연과학계에서UP가 사실로 간주되는 이유는 그간 자연세계가 특정한 방식으로만 일관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물질적 대상은 형이상학적 원리로서의 논리법칙(mLNC)에 의존적이고,최소한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이래로 이 점은 줄곧 참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마치136억 년간 동전이 앞면만 나왔으니 다음 동전 역시 앞면이리라는 오류에 불과할지 모른다.
물론 이에 관한 반론이 있을 수는 있다.하지만 몬테카를로의 오류는 인과관계가 없는 두 사태에 모종의 관계를 상정함으로써 발생하는 오류이다.
동전을100번 던지고 전부 앞면이 나왔다 해도, 101번째 동전이 앞면일 확률은previous coin toss의 결과와는 상관없이50%이다.
(물론 무게중심과 유체역학적 외부요인을 상정한다면 다르겠지만)
허나 세계의 일관성은 단순한 동전 던지기로 유비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동전 던지기와는 달리,시점t1의 세계와 시점t2의 세계는 분명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확률을 통해20세기의 귀납논리를 대표하는 많은 시도들이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루돌프 카르납의 시도가 대표적일 것 같은데,
카르납의 경우에는λ-체계에 속하는c-함수에서 확증도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귀납을 정당화하고자 했던 것이
아마 20세기 귀납논리의 핵심인듯하다.
특히 카르납은 귀납적 추론을 합리화하기 위해’귀납의 직관’ (inductive intuit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던 것이 인상적이던데,
귀납적 추론을 통해서’모든 까마귀가 검다’라는 보편가설을 정당화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앞으로 발견될 어느 한 개체나,또는 다음에 관찰될 한 마리의 까마귀가 검을 것이라는 가설에 대해서는 높은 수준으로 도박을 거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른바’사례확증’의 경우에는 확증도의 값이 매우 높을 것이라고 했었다.
물론 귀납법을 구제하고자 하는 시도는 물론 계속되고 있다.
가령Armstrong은『What is a Law of Nature?』에서 귀납을 일종의 귀추(IBE)로 환원하되,
이를 선험적(a priori)추론으로 간주함으로써 일종의non-deductive a priori induction을 제안하고,
Lange (2011)처럼UP의 순환성이 필연적임을 보이는 시도도 있다.
물론Henderson (2014)이 지적하듯IBE가 귀납과 어떻게 구분되는지 불분명하다는 비판이나UP의 순환성이 해결될 수 없다는 회의주의적 비관론도 있지만..
특히 순환논증과UP의 관계에 대해선 매우 다양한 담론들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Okasha의『Does Hume’s Argument against Induction Rest on a Quantifier-Shift Fallacy?』나
Norton의 『A Material Theory of Induction』,
혹은Achinstein의『The War on Induction: Whewell Takes on Newton and Mill (Norton Takes on Everyone)』을 읽어보자.
귀납에 대한 현대철학의 담론은 가볍게 설명하기엔 꽤나 복잡한지라, SEP에서 관련 article을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