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제까지 단 한 번도 글로 써내지 못했던, 아니 쓸 수 없었던 것을 써보고 싶었다.
1.1.스트레스 좀 풀겠다. 양해 바란다.
1.1.1.이런 식으로 풀릴지는 모르겠다만.
1.2.각각의 글은 그 위의 글과 어떤 방식으로건 연결 돼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글 앞에있는 숫자들을 나침반 삼아 따라가라.
1.2.1.숫자는 상위차원의 글에 대한 하위차원의 글을 의미한다.
1.2.1.1.이렇게.
1.2.2.이 형식에 대한 영감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1922)>와 모더니즘의 대가 T.S.엘리엇의 <The Waste Land(1922)>를 읽은 후에 얻었다.
1.3.이 글은 아포리즘과 농담과 진담과 진실과 거짓과, 담소와 상징화와 암시와 극히 사실적인 것과 극히 비사실적인 것과 꿈과 현실과 왜곡된 기억과 경험이 한데 얽히고 설킨 하나의 거대한 시(poem)다.
1.4.이 글은 전적으로 나에 대한 것이다.
1.4.1.나에 대한 것은 그 친구에 관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4.2.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
1.5.나는 누구인가?
1.5.1.그것은 물어질 수 있는 질문인가? 나에 관한 앎이 나에 대해 메타적인 물음이라면 나는 감히 나에 관해 물을 수 있는가?
1.5.2.I=A
2.정이란 무서운 것이다. 불신을 믿음으로, 증오를 반가움으로, 의심을 신뢰로 바꿀 정도로 정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어쩌면 그렇기에 믿음이 의심으로 바뀌는 게 한 순간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정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정이 들면 귀찮아질 수 있으므로 사전대비를 위해 반년 전에 한 암시가 아직까지 효력이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인간관계에 대해 느낀 것은 참을 수 없는 공허함과 보람과 시간낭비에 대한 자괴감과 참을 수 없는 애증스러움과 죄책감과 행복과 추악함과 그보다 더 무수한 말해질 수 없는 어떤 감정의 추상적인 집합체들로 조각나 있는 기억의 잔상들뿐이다. 얻은 것과 경험한 것 그리고 걸어온 길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나는 내가 느낀 것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2.1.비록 그게 내가 느낀 건지 그 친구가 느낀 건지 꿈속에서 느낀 건지 현실에서 느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2.1.1.뒤돌아보니 시저의 루비콘과 이스라엘의 유프라테스가 보이는구나. 이미 스틱스를 건넜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갈 곳이 있기는한지.
2.1.2.에레보스와 닉스의 아들 카론의 나룻배마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2.1.2.1.?=Z
2.2.정은 정인데 정이 아닌 다른 종류의 정을 느끼고 있는 중이라면 그 정은 무슨 종류의 정인가.
2.2.1.확실한 것은 그 정은 초코파이는 아니라는 점이다.
2.2.1.1.참 재미없는 농담이다.
3.나는 나고 이 친구는 그 자신일 것이다. 둘은 다르다. 이 글을 쓰는 나는 다만 나다.
3.1.이 글은 때문에, 나와 이 친구를 구분하지 않으면 독해될 수 없다.
3.1.1.독해될 수 없다면 그것은 이해될 수도 없다.
3.1.2.L=B
3.1.2.체크포인트 도달 이후 이 친구는 정신이 완전히 나갔다.
3.1.2.1.미친 녀석이 분명하다.
3.1.2.2.사돈남말일 수는 있지만.
3.1.2.3.풀을 뜯는 느부갓네살이나 피로 물든 자홍색 카펫 위를 걷는 아가멤논이 돼가고 있다. 참으로 풍랑 속의 오디세우스같구나.
3.1.2.3.1.아이올로스야 풍랑을 멈추어라.
3.2.나는 때때로 불안하고 초조하다. 2년 전의 일기에서도 나는 미치겠고 혼란스럽고 구토가 치민 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때부터 변한 것이 얼마나 될까. 아직도 구토가 치민다. 모든 것이 잠든 남색의 새벽하늘 위에 누워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별을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에도, 계속되는 언어와, 언어, 그리고 언어의 끝없는 나열을 바라보는 것에도 구토가 치민다. 그리고 두렵다. 대체 뭐가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인지 나는 아직도 도통 모르겠다.
3.2.1.모르는 체 하는 건지 정말로 모르는 건지.
3.2.2.아이올로스의 가죽주머니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는 것이 두렵다면 처음부터 주머니를 찢고 판도라의 상자를 버렸다면 되었을 텐데.
3.2.2.1.열어보는 것 보다는 그것을 여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알지 못하기에 두려운 것이다.
3.2.2.2.언제나 과정이 아니라 결과가.
3.2.2.3.Y=Y
3.3.하나도 모르겠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은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내 머릿속을 채우며 생각을 찔러댄다. 항상 하던 대로 가만히 다시 앉아서 생각을 정리해본다. 보통 몇 시간이 지나면 이런 증상은 사라졌으니 이번에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3.1.나는 평생 혼자 지내다가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두운 구석에서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잊혀 지기를 희망했다. 그것이 내가 가야할 합당한 길이자 내가 마땅히 감사해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이름이 불리지 않기를 원했다. 내 이름은 불릴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죄책감과 자괴감이 이 따위의 싸구려 자의식으로 사라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슬프다.
3.3.1.1.행복을 사랑하게 되면 안 되는데.
3.3.1.2.자격이 없잖아.
3.3.1.2.1.O=C
3.3.1.3.증오스러운 에로스야 방향성없는 화살을 쏜 연유가 무엇이냐. 네가 쏜 화살이 증오의 납화살인지 사랑의 금화살인지 도무지 알 방도가 없구나.
3.3.1.3.1.납화살이건 금화살이건 둘 다 고통인 것은 매한가지겠지만.
3.3.1.3.2.레토의 아들 아폴론아 네가 비웃던 에로스에 의해 펠로폰네소스의 다프네와 사랑에 빠졌구나. 눈을 들어 앞을 보라, 페네이오스가 널 막아섰고 가이아가 네 앞에서 창을 들고 서있는게 보이지 않는지.
3.3.1.3.2.1.다프네를 더 이상 잡으려 하지 말거라.
3.3.1.3.2.2.다프네를 죽이면 모든 게 다 끝날텐데.
3.3.1.3.2.2.1.비록 다프네는 이제 잡을 수도 죽일 수도 없지만.
3.3.1.3.2.3.H=X
3.3.1.3.3.헤라의 아들 마르스와 어여쁜 디오네의 딸 데누스의 아들 에로스야 네가 쏘았던 수많은 금화살이 비로소 네 심장을 향하자 프시케와 사랑에 빠졌구나. 에로스, 가엾은 자야,
3.3.1.3.3.1. 르세라핌의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사랑의 노래도 들어본바 있다. 부정적이다.
3.3.1.3.3.2.아폴론의 사랑보다 에로스의 사랑이 나으니 에로스가 미소지을 때 아폴론은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월계수 앞에 꿇어앉아 애통하지 않을 수가.
3.3.1.4.에라스무스의 광우여신아 네가 말한 사랑은 참으로 삼손의 잘린 머리카락과도 같구나. 유다가 그의 지팡이를 잃었고 도장을 잃었으니 다말아 이제 안심할 때가 왔다. 유다가 우는 와중에도 너는 유다의 지팡이와 도장으로 말미암아 안전하도다, 다말아 뱀과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한 자야.
3.3.1.5.에리니에스의 티시포네를 보내 나를 여기까지 내몬 이는 바알세불인가 신인가. 무의식인가 의식인가, 꿈인가 현실인가.
3.3.1.5.1.그게 중요하긴 하나.
3.3.1.5.1.1.중요한 건 언제나 그랬듯이 무엇을 배우느냐겠지. 어째서 그렇게 되었느냐 보다는 어떻게 그것을 해쳐나가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니.
3.3.1.5.2.생레미의 노스트라다무스나 드고아의 아모스나 테베의 티레시아스가 되고싶다. 미래를 알고 있다면 적어도 준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3.3.1.5.2.1.티레시아스의 눈을 빼앗은 자가 누구냐, 주노인가 카리클로인가, 아니라면 너 지혜로운 미네르바인가. 티레시아스는 눈을 뺏겼으나 그보다 더 큰 것을 얻었구나.
3.3.1.5.2.1.1.볼 수 있는 것을 보는 대신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되었으니.
3.3.1.5.2.1.2.나도 눈을 뺏겼더라면 세계의 고통을 보지않아도 되었을텐데.
3.3.1.5.2.2.그렇지만 도도나의 놋쇠악기(Khalkos Dodones)가 되기는 싫구나. 나는 다만 하나의 조용한 돌덩어리가 되고프다.
3.3.1.5.2.2.1.비록 돌덩어리라면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3.3.1.5.2.2.2.하지만 어쩌면 돌덩어리는 우주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을지도.
3.3.1.5.2.2.3.말을 하지 않는다고 아프지 않은 게 아니잖아.
3.3.1.5.2.2.4.V=D
3.3.2.나는 어둠을 사랑한다.
3.3.2.1.어둠 속에서는 아무도 나를 볼 수 없으니까.
3.3.2.1.1.나마저도.
3.3.2.1.2.W=W
3.3.2.2.새벽에만 외출을 하는 이유 중 하나다.
3.3.2.3.바이오피드백을 통한 자기암시로 부신피질을 자극해서 에피네프린을 촉진시킴으로서 공간지각능력을 일시적으로 향상시키면 어둠 속에서 물체를 지각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3.3.2.3.1.물어본 적이 없다.
3.3.2.3.2.누구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닌데.
3.3.2.3.2.1.E=E
3.3.3.어둠 속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어둠과 융합된 채 형태와 윤곽을 상실한다. 나는 어둠보다는 어둠과 융합되는 그 순간을, 그래서 세계에서 내가 망각되는 바로 그 지점을 사랑한다.
3.3.4.나는 어둠 속에서만 나를 잊을 수 있다. 나는 그 속에서만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널 수 있다.
3.3.4.1.나는 레테를 사랑한다. 망각과의 섹스는 포근하다.
3.3.4.1.1.그 섹스가 단지 일시적인 안도감을 줄 뿐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3.3.4.2.그랬었나.
3.3.4.3.O=V
3.4.치기 어려서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치기어리다. 따라서 나의 치기어린 면모를 발견하고 짐짓 놀란 체 할 이유가 없다. 나는 내가 치기어리다고 몇 번씩이나 역설했다. 믿지 않은 건 그쪽이시다.
3.4.1.내 아이다움은 초등학생의 그것보다 나은 게 없다.
3.4.1.1.나쁜 의미로.
3.4.2.아마?
4.어쩌면 나는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허구한 날 코스프레를 하며 정신승리를 하곤 했었다. 찌질이들의 주된 특성이지, 지금까지도.
4.1.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억누르거나 숨기는 것을 잘하는 것뿐이었다. 자기암시와는 논외로, 자아가 공격받을 때 능동적으로 촉진되는 에피네프린이 모든 것을 말한다.
4.1.1.나는 자기암시를 정말로 잘한다. 나는 내가 느끼는 모든 종류의 감정을 완전하게 밟아서 분쇄해버릴 자신이 있다.
4.1.2.자랑이다.
4.1.2.1.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지만.
4.1.2.1.1.Y=F
4.1.2.2.불필요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좌우간 정말 편한 것이다.
4.1.2.2.1.내가 아르마딜로를 부러워하는 31만 3597개의 이유 중 하나다.
4.1.2.2.1.1.아르마딜로가 감정을 못 느꼈었나.
4.1.2.2.2.흔들리지 않아도 되잖아.
4.1.2.2.3.S=U
4.1.3.내가 비인간적이라는 걸 부정할 의향이 없다.
4.1.3.1.안타깝게도 나는 인간이다. 비인간적 이기엔 나는 한 없이 인간적이다.
4.1.3.1.1.그래서 슬프다. 차라리 글을 쓰는 로봇이었다면 좀 더 좋았을 텐데.
4.1.4.어쩌면 나는 로봇이 되고 싶은 사람이거나 사람이 되고 싶은 로봇인지도 모른다.
4.1.4.1.아니라면 사람이 되고 싶은 로봇이 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고 사람이 되고 싶은 로봇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고 로봇이 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고 로봇이 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4.1.4.2.그만하자.
4.2.상처에 관해 말했다. 많이 안쓰러웠고, 할 수 있는 말이 힘내라는 흔해빠진 말밖에는 없었기에 안타까웠다. 말이 되돌아 왔다. 언제나 그렇듯 나의 목소리는 나르키소스에 대한 에코의 목소리일 뿐이다.
4.2.1.언젠가는 내 목소리가 들리겠지.
4.2.1.1.꿈으로부터 현실에게.
4.2.2.처음부터 상대의 상처에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닐까.
4.2.3.아마도.
4.2.3.1.O=G
4.2.4.나는 근본적으로 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4.2.5.때문에 내가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때는 보통 둘 중 하나다. 상대가 나에게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자기기만적으로 믿고 있는 것이거나 그런 태도가 나에게 이득이 되거나.
4.2.5.1.둘 다 일수도.
4.2.5.2.엄밀하게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우리의 이득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 내에서 태어났다.
4.2.5.2.1.비록 그것은 필연적이거나 본능적이거나 선천적인 것은 아닐 수 있어도.
4.2.5.2.2.이건 일종의 자기방어다.
4.2.5.2.3.Y=T
5.내 방어기제는 망각에 특화 돼있다. 나는 매우 고통스러운 무언가를 맞닥뜨린 후 그것을 의식적으로 완전히 잊어버린다. 통곡의 벽에 대고 마음이 찢어질 때까지 고함을 지르느니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꿈에서 깨면 모든 게 다 끝나 있을 테니.
5.1.몽유병에 걸린 것 같다. 꿈에서 깨고 일어나보면 상처가 나 있다.
5.1.1.녹화를 해보면 좋겠다.
5.1.1.1.녹화기록에 귀신이 찍혀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5.1.1.2.그럼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전부 귀신의 탓으로 책임전가하면 그만이니.
5.1.2.분명 현실에서 무슨 말을 했었는데 알고 보니 꿈이었던 상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5.1.2.1.사실 지금도 꿈속에서 쓰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솔직하게 쓰고 있다.
5.1.2.2.솔직하다는 서술이 내가 하는 말이 사실이라고 믿게 하기 위한 나의 의도적인 양동작전일 수는 있겠지만.
5.1.2.3.나는 드림다이어리를 쓰는 것과 리얼리티 체크를 통해 꿈과 현실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까지 내가 틀렸었다.
5.1.2.4.나는 어느 순간부터 꿈속에서조차 드림다이어리를 쓰고 있었으니까.
5.1.2.4.1.루시드 상태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잠시 루시디티 커넥션이 끊겨서 내가 현재 꿈을 꾸는지 현실 속인지 분간이 안 가는 상태에서 있던 적이 있다. 이 정도까지 쓰다 꿈의 세계 내부에서 글을 썼기에 글이 전부 지워져버린 사건이 있었는데 꿈에서 깬 후 그 사건의 충격으로 주기적으로 글을 저장하는 습관이 생겼다.
5.1.2.4.2.U=H
5.1.2.5.투사체는 나타나는 즉시 살해해야한다. 내버려두면 귀찮아진다. 투사체의 존재는 페이드아웃 현상이 나타나는 상태에서 꿈의 세계를 수복시켜야할 때 뇌에 과부하를 준다.
5.1.2.5.1.다른 이유도 있긴 하다.
5.1.2.5.1.1.투사체를 내버려두면 자동적인 자기암시를 통해 내가 애증 하는 존재로 모습을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5.1.2.5.1.2.그리고 그것은 지옥이다.
5.1.2.5.1.3.그 때 꿈의 세계에서 바로 로그아웃 하지 않으면 나는 분명 자살을 하고 말 것이다.
5.1.2.5.1.3.1.일단 타자에 대한 프레임이 형성된다면 주체는 그 순간부터 특정한 프레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타자에 대한 인상을 구성하게 된다.
5.1.2.5.1.3.2.고착된 인상이 암시를 통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고 누군가에 대해 형성된 프레임과 모순되는 사실을 습득했을 때 충격을 받는 이유다.
5.1.2.5.2.꿈은 단지 힙노스와 타나토스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을 뿐인 그 무엇인 반면 드리머는 알케스티스를 살리고자했던 헤라클레스이거나 타나토스를 골탕먹인 시지프스의 중간 지점에 서 있다.
5.1.2.5.2.1.그것이 카뮈가 말한 시지프스의 형벌이라면 나는 차라리 존재를 망각하기를 원한다. 차라리 형벌이 형벌이었다는 사실마저 망각하기를 원한다.
5.1.2.5.2.1.1.망각은 고통의 부재일테니.
5.1.2.5.2.1.2.A=S
5.1.2.6.나는 내 꿈의 세계의 드리머이자 의식적 관리자로서 무의식의 관리자인 최상위투사체는 결코 살해할 수 없다.
5.1.2.6.1.그게 문제다. 최상위투사체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5.1.2.6.2.꿈의 세계 내에서 루시드 돌입을 하고 최상위투사체를 맞닥뜨린다면 시간 정지후 사건의 재생속도를 역으로 재생해서 최상위투사체를 일시적으로 소멸시키는 것은 가능하기는 하다.
5.1.2.6.2.1.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타나기는 하지만.
5.1.2.6.2.2.B=I
5.1.3.나는 마치 클로토와 라케시스와 아트로포스의 운명의 베에 의해 정해진 듯이 혹은 헨리 지킬이 에드워드 하이드에 대해 느끼듯이 누군가를 애증하고 있었다.
5.1.3.1.그 친구다.
5.1.3.2.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은, 혹은 그는, 또는 그녀는, 나는 아니라는 점이다.
5.1.3.3.S=R
5.1.4.투사체는 무의식의 잔해이고 최상위투사체는 무의식의 관리자로서의 그 친구이이다.
5.1.4.1.나는 나다.
5.1.4.1.1.?
5.1.4.1.2.!
5.1.4.2.아마.
5.2.내 방어기제의 망각기능의 문제는 한 번 망각한다면 다시 회상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5.2.1.기억이 어렴풋한 잔상처럼 남아있기는 하지만.
5.2.1.1.언젠가 꿨던 악몽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5.2.1.2.고통이 우리를 영원의 세계로 앗아가기를 기다리지 말고 어서 모르페우스를 깨우자.
5.2.1.3.달콤한 그래서 잔인할 수밖에 없는 꿈속으로.
5.3.의식적으로 무의식상에 있는 특정한 기억의 조각들에 접근할 수 있을까.
5.3.1.접근가능하다면 나는 나의 무의식적 방어기제가 접근금지영역으로 규정한 그 곳에 어떤 기억들이 쌓여있는지 보고 싶다.
5.3.2.무의식이라는 마트료시카 내부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아내고 싶다.
5.3.2.1.아리아드네의 실과 테세우스의 검이 필요하다.
5.3.2.1.1.미노타우루스는 어디에 있나.
5.3.2.1.2.미노타우루스가 없는 다이달로스의 미궁에는 테세우스의 검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아리아드네의 실이 필요할뿐이다. 미궁 밖에 있는 카이로스의 하늘 아래에 있는 미노타우루스에게는 아리아드네의 실 대신 테세우스의 검만이 필요할 뿐이다.
5.3.2.2.열리지 않는다면 부수면 그만이다.
5.3.2.3.문제는 그 마트료시카를 부수면 안 된다는 사실에 있다.
5.3.2.3.1.아리아드네의 실을 잃어버리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잖아.
5.3.2.3.2.마트료시카가 부숴지면 아리아드네의 실은 다만 무용지물이 되겠지만.
5.3.2.3.3.U=J
5.3.3.트라우마의 원인이 되는 기억에 접근하는 순간 나의 의식이 산산이 찢어져버린다면 어떤 기분일지.
6.무언가에 점철돼가고 있다. 나는 모든 감정을 꾸역꾸역 짓눌러서 아릿할 때까지 밟아 없애버리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때때로 이런 감정들이 몇 년에 한 두 번씩 욕구불만에 쌓인 채 갑작스럽게 튀어 올라올 때면 공황장애에 빠져서 무언가를 칼로 퍽퍽 찍고픈 충동이 들기에 자해를 하거나 불을 전부 끄고 구석에 앉아서 덜덜 떨며 공황장애가 사라지기를 기다리거나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견뎌내야 한다.
6.1.최근 들어 이런 증상이 잦아졌다.
6.1.1.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6.1.2.전에도 그랬었지만 단지 망각한 것일 수도.
6.1.3.T=Q
6.2.아스퍼거 양성반응이 나왔는데 소시오패스에 더불어 좋은 콤비네이션이 될듯하다.
6.3.두렵다.
7.나는 두려움을 인지하는 순간 더 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7.1.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된다.
7.1.1.재밌잖아, 실체도 없으면서 마치 악몽처럼 우리에게 헝클어진 불안의 실타래를 한 움큼씩 쥐어주는 두려움이라는 게.
7.1.2.한바탕 웃고 나면 두려움은 사라져있다.
7.1.3.나는 정말 잘 웃는다.
7.1.3.1.즐거워서 웃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7.1.3.2.내가 웃을 때 그것은 보통 두 가지 중 하나다. 아프거나, 웃을 필요가 있거나. 결국 휘황찬란한 빈곤의 도시 라우디게아에 필적할만한 가식이다.
7.1.3.3.나는 미소를 사랑한다.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한 일말의 진심을 드러내니까.
7.1.3.3.1.그게 거짓이건 진실이건.
7.1.4.나는 결코 내 상처를 들이밀며 이게 내 상처라고 말하지 않는다.
7.1.4.1.대신 끝까지 침묵한다.
7.1.4.2.자존심이다.
7.1.4.2.1.자신의 상처가 특별하거나 대단하다거나 세상의 온갖 고통과 비할 바가 못된다는 착각을 하는 순간이 바로 상처에 다치는 순간일 뿐이다.
7.1.4.2.1.1.내가 나의 상처에 다칠 수 없는 이유이다.
7.1.4.2.1.2.T=K
7.1.4.3.나는 비관에 빠진 카산드라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광기와 복수에 불타는 클리템네스트라가 되고 싶지도 않다.
7.1.4.3.1.클리템네스트라가 이해되지 않는건 아니지만.
7.1.4.3.2.이피게니아의 꽃은 한 순간에 졌구나.
7.1.4.3.3.나는 비극에 빠져 고민하는 햄릿도 아니고 비관에 빠져 자책하는 쇼펜하우어도 아니다. 하지만 고뇌하는 연가의 프루프록도, 로테를 연모한 소극적인 베르테르도, 그렇다고 캐서린을 얻고자 발버둥치는 히스클리프도 아니다. 나는 오히려 이상을 꿈꾸는 데미안이나 소냐의 애원에 속죄하고자 하는 라스콜리니코프나 또는 알리사를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제롬이나 빨간 장미꽃을 보호하는 어린왕자에 가깝다.
7.1.4.3.3.1.장미꽃아 내가 너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아니.
7.1.4.3.4.O=P
7.2.생리적 화학작용 따위에 영향을 받고 싶지 않다.
7.2.1.내가 느끼는 게 생리적 화학작용일 뿐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7.2.2.그렇게 생각하자 다시 두려움이 엄습했다.
7.3.나는 다시 웃는다.
7.3.1.뭐가 재밌어서 그렇게 웃는지.
7.3.1.1.망각을 위한 것이라면?
7.3.2.웃지 않기엔 너무 아프다.
7.3.2.1.아파서 웃는 건지 웃어서 아픈 건지.
7.3.2.2.아픔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7.3.2.2.1.C=L
7.4.고동치는 뜨거운 심장에 박힌 화살을 오른손으로 뽑으니 피가 마치 분수처럼 콸콸 쏟아져 나오는구나.
7.4.1.붉게 물든 손이 광명 아래에서 바삭거리는 소리와함께 타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나 심장에서 흐르는 피는 도무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은데.
7.4.1.1.왜일까.
7.4.2.빨갛게 빛나는 화살촉이 아름다우나 화살촉에 가만히 앉아있는 피마저도 마를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 타들어가는 손바닥 위에 덩그러니 놓인 주인없는 화살아.
7.4.2.1.왜인지 나에게 말해주겠니.
7.4.2.2.에로스야 갈곳 없어진 화살을 네게 돌려주니 이제 받아가거라.
7.4.2.2.1.피를 쏟아 정신을잃은 내가 너를 죽이기 전에.
7.4.2.2.2.네가 죽으면 모든 게 다 끝나겠지.
7.4.2.2.2.1.N=O
7.4.3.레테야 어서 날 안아다오, 므네모시네가 나를 찾아와 차갑게 문을 두드리기 전에.
7.4.4.메르페우스야 어서 날 달콤한 꿈속으로 데려가다오, 네 어버이 에레보스와 닉스가 몸부림치는 세계의 고통을 어둠속에서 드러내기 전에.
7.4.4.1.크로노스를 기다리면서.
7.5.네메시스와 하데스마저 음악으로 사로잡고 누군가를 위한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카론의 스틱스를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건넌 너 오르페우스야 착각은 자유다.
7.5.1.에우리디체는 네 삶의 필요조건이 아니니.
7.6.모이라이야, 노나와 데시마와 모르타야. 지금도 아무 말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는 아트로포스야.
7.6.1.네가 들고 있는 실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 내게 부디 알려주겠니.
7.6.1.1.방향만이라도.
7.7.앞이 불투명한데 어떻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7.7.1.A=M
8.지금 이 순간이 체크포인트이자 여정의 끝이라면.
8.1.좋겠지만.
8.2.끝은 또 다른 시작에 불과하다.
8.3.남은 문제는 이제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있을 따름이다.
8.3.1.물론, 선택을 한다는 선택을 한다면.
8.3.2.그리고 그게 내 선택일 수 있다면.
8.3.3.선택은 존재의 증명이니까.
8.3.3.1.선택은 존재의 가치를 담고 있다.
8.3.3.2.선택이 사라지는 순간은 세계의 끝이다.
8.4.선택의 끝은 여정의 끝이다.
8.4.1.여정의 끝은 존재의 끝이다.
8.4.2.여정의 끝이라는 게 있다면.
8.4.2.1.여정의 끝은 없다.
8.4.2.1.1.그래서.
8.4.2.2.선택은 세계의 끝이 아니라, 세계의 시작이다,
9.새로운.
10.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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