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비를 거의 처음 읽을때 했던 질문, 근데 왜 3회독 할때 올린지는 모르겠음.)
순수이성비판 중
나는 이 자리에서, 앞으로의 모든 고찰에 영향을 미치고,
그런 만큼 사람들이 유념해야만 하는,
하나의 주의를 해 둔다. 곧, 선험적인 모든 인식이 아니라,
단지 그것들에 의해 어떤 표상들이 (직관이든 개념이든)
오로지 선험적으로 적용된다거나 또는 선험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과,
그리고 어떻게 해서 그러한가를 우리가 인식하는,
그런 선험적 인식을 초월적 (다시 말해, 인식을 가능하게 함 내지는 인식을 선험적으로 사용함)
이라고 일컬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간도 공간의 어떠한 선험적인 기하학적 규정도 초월적 표상이 아니고,
이런 표상들은 전혀 경험에 근원을 두고 있지 않다는 인식과,
그러면서도 이 표상들은 경험의 대상들과 선험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다는 가능성만이 초월적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공간의 대상들 일반에 대한 사용도 초월적일 터이지만,
그 사용은 오로지 감관의 대상들에 국한되어 있고,
그래서 그것은 경험적이라 일컫는다.
그러므로 초월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의 구별은 단지 인식들의 비판에 속하며,
인식들의 대상과의 관계맺음에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현재미래세가 있으면
현재에 무명(無明)의 과거가 선험적인 조건이면
그 선험성이 가능하려면 플라톤 식대로
망각의 강(레테의 강)을 지나 상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도 하는데
그 간극을 뛰어넘는게 하나의 초월이고,
그 초월은 현생이 끝나고 내생으로 건너간다던가…
한편 현세 내에서 사물을 절대적 차원에 가깝게 인식하는 것 정도가
다른 종류의 초월이라 말할 것이라고 여겨지네요.
대상과 대상, 표상과 인식의 관계를 인식하는 걸
초월이라고 보는건데 선험의 초월은 선험의 원리를 내가 관찰할때 결국 표상의 관계들은 선험과 경험으로 알 수 없단거네요….
초월로서 알 수 있다는 거고
진리는 선험 너머에 관계에ㅜ있단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