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5월 15일부터 30일까지 연재한글)

Good bye Kant - 논리주의(Logicism)의 등장 논리주의는 수학적 진리가 논리적 진리라는 주장이다. 즉, 논리주의는 수학적 진리는 논리적 진리로부터 연역될 수 있다고 본다. 때문에 수학적 지식은 논리적 지식과 같다. 그렇다면 논리주의자가 해야할 작업은 우선 논리적 진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는 것이고, 그런 논리적 진리로 부터 수학적 진리가 어떻게 따라나오는지를 보이는 일이다.

프레게의 경우 칸트에 대한 반발로 수학적 진리가 논리적 진리라는 주장을 했다. 물론 칸트가 분석성에 대한 만족스런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지만, 프레게의 입장은 칸트의 구분을 따른다면, 수학은 분석적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프레게의 경우 기하학에 대해서는 칸트에 동의한다. 물론 프레게 시대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제시되었지만, 프레게는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해서는 공간직관에 관한 지식이라고 보았다.프레게의 분성성(analytic)에 관한 정의는 ‘논리법칙과 정의로 부터 따라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 프레게는 고전논리학을 제시한다. 이것은 논리학사에서도 획기적인 발전이다. 프레게가 이 체계를 제시한 목적이 바로 정의와 논리규칙으로 부터 수학의 진리가 연역될 수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그리고 이 작업은 수학, 철학의 작업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에, 당대에 이 작업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상당히 소수였다. 때문에 프레게는 상당히 외로웠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프레게의 작업을 위해서는 수학자들의 추론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이 추론은 일상적 추론이 보다 정교화된 형태이지만, 추론의 방법은 다르지 않다. 그리고 프레게의 작업은 이 추론이 직관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형식적으로 추론될 수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프레게 기획의 동기 프레게가 ‘수가 논리적 대상이어야 한다.’, ‘수학적 진리가 분석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동기는 수에 대한 진술의 적용범위가 주제 중립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즉, 보편적으로 적용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레게는 논리 규칙이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것 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수학이 논리 규칙에 의존한다고 보았다. 기하학이 직관에 의존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수학은 우리가 직관할 수 없는 것에도 적용될 수 있다. 때문에 수학은 기하학보다 적용범위가 더 넓다고 본 것이다.

논리학과 수학에 관련된 프레게의 주요저작 1879 – Begriffschrift(개념표기법) 1884 - Die Grundlagen der Arithmetik(산수의 기초) 1903 - Grundgesetze der Arithmetik

수학을 다루기 위한 프레게의 작업 경로 유리수와 정수는 자연수로 정의 될 수 있다. 또한 실수도 Dedekind cut에 의해서 정의가 가능하다. 따라서 수를 정의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연수를 정의하는 것이다. 따라서 프레게의 작업이 정의와 추론규칙의 제시에 있다면, 수학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자연수를 정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프레게 작업의 1차적 목표는 자연수를 정의 하는 것(공리계로 제시하는 것)이고 2차 목표는 그런 정의로 부터 논리적 규칙들을 통해서 수학적 진리들을 추론하는 것이다.

프레게의 형이상학과 논리학 프레게는 대상과 개념을 존재론적으로 구분한다. 프레게는 존재하는 것이 대상이거나 개념 둘중하나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대상은 이름들의 지시체이다. 그리고 이 이름은 단순할 수도 있지만 복잡할 수도 있다.(박근혜, 2013년 한국의 대통령, 4, 1+3등) 그러나 이름만 가지고는 생각을 나타낼 수 없다. 생각은 참이거나 거짓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름들의 열거는 참도 거짓도 아니다. 즉, 언어적으로는 이름 뒤에 붙은 술어가 있어야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이 술어가 바로 개념이다.(때문에 술어는 이름과 구분되며, 대상을 지칭하는 표현이아니다.)

정리 대상은 이름의 지시체이며, 개념은 술어의 지시체다.

프레게는 개념이 함수의 특수한 예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수학에서 보는 함수들은 논항이 수이며 함수 값도 수인 함수들이다. ex) F(x) = x+4 그러나 다음과 같은 함수를 고려할 수 있다. ex) x+4=6 이것은 얼핏 함수가 아닌 것 같지만, 함수값을 진리치로 고려한다면 함수가 될 수 있다. 즉 이 함수는 수를 논항으로 하고 함수값을 진리치로 하는 함수다. 개념은 이와 같이 함수 값을 진리치로 갖는 함수다.(논항의 경우는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대상과 개념의 중요한 존재론적 차이가 있다. 우선 대상만으로는 생각을 나타낼 수 없다. 즉 개념이 필요하다. 그런데 개념에는 대상에 의해서 채워져야하는 부분이 있다. 즉, 개념은 불포화(Unsaturated)되어있다. 반면 대상은 그러한 빈자리가 없으며 포화(saturated)되어있다. 그리고 이러한 고려는 논리학에도 반영이 되어 있다.

논리주의적 작업을 위해서는 논리 규칙들을 명시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으며, 이것이 1879년 “개념표기법”(Begriffschrift)의 작업이었다. 우리가 기호논리학에서 배우는 동일성기호를 포함하는 1차논리(First order logic with identity)는 이 체계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개념표기법”의 체계는 동일성기호를 포함하는 1차 술어논리 그리고 개념에 관한 양화를 하는 2차논리(Second order Logic)을 포함한다.

수를 대상으로 보는 것과 개념으로 보는 것의 차이

자연수의 정의를 주어야 한다는 것은 개별적인 수와 자연수를 논리규칙에 따라 정의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우선 앞에서(밀의 수학철학에서) 우리는 ‘0개의 F가 있다.’, ‘1개의 F가 있다.’와 같은 것을 동일성기호를 포함하는 1차논리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이 정의는 ∃0, ∃1, ∃2 ……. 와 같은 수를 표현하는 양화사(numerical quantifier)를 원초적인 양화사(존재양화사와 보편양화사)로 정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프레게가 목표로하는 전부는 아니다. 프레게가 의도하는 것은 수를 대상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수를 표현하는 양화사가 불충분한 이유는 수를 표현하는 양화사가 형용사적인 표현이지 대상에 관한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레게도 일종의 유형론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 개념은 대상들에 적용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설리는 예쁘다.’라고 했을 때, ‘-는 예쁘다.’라는 표현은 대상들에 적용되는 개념이다. 양화사는 개념에 적용되는 개념이다. ‘∃xFx’의 의미는 F인 것이 있다이며, 여기서 ∃의 의미는 F라는 개념에 대한 개념이다. 즉 Fa와 ∃(F)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수를 표현하는 양화사는 F에 적용되는 ∃0(F), ∃1(F)와 같은 개념에 적용되는 개념이다. 이렇게 개념에 적용되는 개념을 2차 함수 혹은 2차 개념(Second level concept)이라고 한다.

F(a) - F is first level concept / ∃n(F) - ∃n is second level concept

“산수의 기초”에 나타나는 프레게의 생각은 수가 개념이 아니라 대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를 표현하는 양화사로는 개별적인 수를 정의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프레게가 수가 대상이라고 주장하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프레게가 수를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들 1) 수 진술에서 수는 이름의 역할을 한다.(1 더하기 2는 3이다.) 반론 - 이것은 표면적 형식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강한 이유는 아니다. 왜냐하면 표면 형식과 논리적 형식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를 주목한 대표적인 작업이 러셀의 Deion 이론이다. 예를 들어 ‘현대 프랑스 왕은 대머리다.’에서 ‘현대 프랑스 왕’은 마치 대상을 지시하는 표현처럼 보이지만, 이것을 분석하면 개념들로 분석된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대상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를 이름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2)(Dummett에 의해서 주장되는) 수에 대한 정의로부터, 자연수가 무한히 많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개별적인 수를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고는 증명할 수 없다.

프레게 기획의 난점 프레게는 개별 수가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물론이고, 이것이 논리적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수학적 대상은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프레게의 기획은 수학적 진리가 선험적이고 논리적 진리라는 것을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학적 대상은 수 개념으로부터 알려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논리적 수단만으로는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칸트가 이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신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 즉 신의 정의로부터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은 불가능하다. 논리적 수단(개념적 진리)으로 부터는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존재에 대한 증명은 경험에 의존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프레게의 기획은 기존의 통념과 충돌한다고 볼 수 있다. 논리적 수단만으로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수를 대상으로 도입하기 우선 수가 어떤 것들에 적용될 수 있는가를 분명히 해야한다. 앞서 ∃n(F)를 다루었다. 여기서 수는 개념에 적용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정당화 해야 한다. Fx에서 x 자리에 들어가는 것은 단칭명사(Singular term)다. 프레게는 단칭명사는 항상 지시체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것은 동일성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경우에 정당화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수가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수에 관한 동일성 조건을 주어야 한다.(프레게는 이것이 흄에서 발단이 되었다고 하지만 철학사가들은 이것이 지나친 겸손이라고 본다.)프레게가 동일성 조건을 주는 방식은 칸토르의 방식과 유사하다. 즉, 개념의 외연을 통해 정의하는 것이다. F와 G가 같은 수라는 것은 F로부터 G로의 전단사 함수가 있다는 것이다. 즉 F에 적용되는 대상들과 G에 적용되는 대상들을 모두 1:1로 관계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n=∃m과 같은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이 작업은 F들의 수 = G들의 수 ↔ F로부터 G로의 전단사 함수가 있다.(F≈G)로 동일성 조건을 준 것이다. 여기서 F와 G에 들어가야 할 것은 개념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Nx:Fx] = [Nx:Gx] ↔ F≈G(equinumerous relation) (F인 x의 수와 G인 x의 수가 같다 iff F로부터 G로의 전단사 함수가 있다.)

[Nx:Fx] = [Nx:Gx] ↔ F≈G을 Hume’s principle(2)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H.P(2)로는 어떤 수가 있다는 것을 도출할 수 없다. 여기에는 H.P(1)이 필요하다.

H.P(1) : ∃y(y=[Nx:Fx]) / Fx인 대상 x의 수가 되는 대상 y가 있다. 즉 ‘수’가 있다.

프레게는 이것이 기본 원칙이지만 불충분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H.P(2) 만으로도 상당한 성과라고 본다. 페아노 공리와 데데킨트의 정리들이이 원칙으로부터 따라나오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산수의 기초”에서 거칠게 다루어졌고, “Grundgesetze”에서 엄밀하게 다루어 졌다.

개별적인 자연수 정의 그렇다면 수가 대상으로 다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이 보여졌으니, 개별적인 자연수를 정의할 차례다. 0부터 시작해서 절차를 반복적으로 적용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우리는 자연수를 제시할 수 있다. 0부터 시작하자. 이것은 다음과 같이 제시된다.

0개의 F가 있다. 즉 F가 적용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F가 공허하다.)

0 = [Nx:Fx]다. 이때 F의 개념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가 문제다. 아마 천사들의 수와 같은 것도 0이 되겠지만, 이것은 논리적 개념이 아니다. 여기에는 논리적 모순이 적합할 것이다. 모순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일성기호를 포함하는 1차논리로 모순을 정의하면 된다. 간단한 모순은 x≠x로 정의 할 수 있다.따라서 0 = [Nx:x≠x]로 정의할 수 있다. 이제 0을 도입했기 때문에, 이것을 통해서 다른 수를 정의 할수 있다. 0과 같은 것은 0뿐이다. 즉 0과 같은 것은 0 한가지 뿐이다. 이를 통해서 정의 할 수 있다. 1 = [Nx:x=0] 이런 방식으로 그 다음 수들을 정의할 수 있다. 2 = [Nx:x=0 v x=1] / 0이거나 1일 수 있는 것은 0과 1 두가지 뿐이다.

이것을 집합으로 고려한다면 폰노이만 방식의 집합의 수를 정의하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ex) {0},{0,{0}},{0,{0},{0,{0}},…….

자연수에 대한 프레게의 정의 자연수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우리가 자연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다음수 연산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수가 갖는 관계를 정의해야한다. Successor relation을 통한 Peano의 방식은 함수를 통해 정의 하는 것이다. 프레게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정의한다.

Successor relation(n,m) => ∃F∃x∃y(Fx & [Nx:Fx]=n & [Nx:Fy&y≠x]=m) 여기서 [Nx:Fy&y≠x]는 F에서 y를 제외한 것, 즉, n-1을 의미한다. (∃x까지는 FOL로 충분하다. 그러나 ∃F는 SOL을 필요로 한다. 즉, 이것은 2차논리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 Successor definition이 함수다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1:1 함수라는 것의 증명)

즉, successor(n,m) ≡ n=m’ (여기서 m’은 m의 다음수)

어떤 수가 자연수라는 것은 어떻게 결정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0부터 n까지 다음수 연산을 유한번 적용해서 도달할 수 있다면 n이 자연수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한번’이라는 것은 자연수에 대응가능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때문에 자연수 개념을 정의하고자 한다면 ‘유한번’이라는 것을 자연수 개념에 호소하지 않고 정의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인가?

데데킨트의 무한 정의는 자연수 개념을 정의하지 않고 무한을 정의한다. 따라서 이 무한의 정의로 부터 유한을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Dedekind의 무한 정의 - 무한집합의 진부분집합은 무한 집합과 1:1 대응할 수 있다.(예를 들어 자연수 집합과 홀수의 집합은 1:1 대응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진부분집합과 1:1 대응할 수 없는 집합은 유한 집합이다. 그러나 이 정의도 1차언어로는 정의할 수 없다. 이것을 만족스럽게 정의하기 위해서는 제한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연수 구조가 아닌 비표준적 모델을 배제해야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데데킨트의 simple infinity만을 구조로 체택하고자 한다.(그러나 1차언어로는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간단하게 스콜렘 레벤하임 정리를 고려해야라)

≤(n,m)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n,m) := n에 successor relation을 유한번 적용해서 m에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n이 자연수

라는 것은 0≤n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유한은 현대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제시된다.

≤(n,m) := n은 m을 포함하고 successor relation에 닫혀 있는 가장 작은 집합에 속한다.

닫혀 있다는 것은 다음을 의미한다. n∈N, m∈N => n+m∈N(자연수는 덧셈에 대해 닫혀 있다.)즉, successor relation에 대해서 닫혀 있다는 것은 m이 자연수 일때, m과 successor relation이 있는 n도 자연수라는 것이다. 그러나 닫혀 있다는 것만으로는 비표준적 해석을 막지 못한다. 가령 다음과 같은 구조를 고려하자. 0, 1, 2, 3, ………………., ω, ω+1, ω+2, ………. (여기서 ω는 자연수의 마지막 열 다음에 오는 수다.)

이 구조역시 successor relation에 대해서 닫혀 있다. 비록 가장 큰 자연수가 없다고 할 지라도, 표준적인 자연수 구간에서 successor relation에 대해서 닫혀 있으며, 이후에 나타나는 구간에서 역시 successor relation에 대해서 닫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도하는 구조로만 결정되도록 정의를 하기위해서라면 가장 작은 집합에 속한다는 제한이 필요하다. 가장 작은 집합이라고 한다면 ω 이후에 등장하는 열을 배제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논리적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F가 유전적이다.(F라는 개념이 유전적이다.) := F가 successor relation에 대해 닫혀 있다. 즉, (∀x)(∀y)(Fx & Successor(y,x) -> Fy) / 모든 x에 대해서 x가 F를 만족하고, y가 x의 successor라면 y는 F를 만족한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가장 작은 집합 이라는 조건을 포함한 표현은 다음과 같다.

F가 유전적이며, 가장 작은 집합이다. := (∀F)(Herditary(F) & Fm -> Fn) / 유전적이고, m을 포함하는 모든 개념은 n을 포함한다.

따라서 우리는 ≤(n,m)을 정의한 것이고 이 정의에 따라서 0≤n을 정의할 수 있다.

0≤n := ∀F(Herditary(F) & F0 -> Fn) iff ∀F((∀x)(∀y)(Fx & Successor(y,x) -> Fy) & F0 -> Fn)

이것으로 부터 수학적 귀납법을 도출 할 수 있다.

iff F((∀x)(∀y)(Fx & Successor(y,x) -> Fy) & F0 -> Fn) iff F((∀y)(Fa & Successor(y,a) -> Fy) & F0 -> Fn) iff F((Fa & -> Fa’) & F0 -> Fn) / 0’가 0의 successor다. iff F(F0 & (Fa & -> Fa’) -> Fn) iff ∀F(F0 & (x)(Fx -> Fx’) -> Fn) / 0에 대해서 성립하고 successor relation에 대해서 성립하는 모든 개념 F는 임의의 자연수 n에 대해서 성립한다. (일반적인 수학적귀납 규칙 := (∀F)(F0 & (∀x)(Fx -> Fx’) -> (∀x)(Fx))

프레게의 불만 우리의 자연수 정의에서, 이순신 혹은 시저가 수인가 아닌가를 결정할 수 있는가? 이것은 상당히 이상한 비판이다. 우리의 상식으로 시저나 이순신은 자연수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이미 자연수 개념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자연수를 정의하는 것이고 이것은 자연수가 아닌 것을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적용 조건(Application condition)을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개념에 포섭되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조건에 따라 자연수의 적용범위가 제시되어야 한다. 일상적으로는 이러한 경계가 불분명 할 수 있다.(예: 태아가 사람인가?) 그러나 우리가 논리학에서 수행하는 작업은 개념을 분명하게 정의하기를 요구한다. 가령 F∨-F를 받아들이는 것은 F의 경계가 분명할 때 가능하다.

정리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은 다음 두 가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1) 적용 조건(Application condition) - 개념을 어떤 대상에 적용하는가? 2) 동일성 조건(Identity condition) 이 두 가지 방법으로 개념을 사용할 수 있어야 이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 유리수의 동일성 조건 : a/b = c/d ↔ ad=bc 유리수의 적용 적용 조건 : π∉P, i∉P 등등.

흄의 원리2(H.P.2)는 동일성 조건만을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것이 수인지에 대해서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흄의원리는 시저가 자연수인지 아닌지 결정하지 못한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논리적 원칙을 제시해야한다. 프레게가 도입한 원칙은 ‘F들의 수’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F의 외연’혹은 ‘F의 집합’을 도입하는 것이다. ‘F의 집합’과 같은 것은 ‘F의 수’보다는 일반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집합을 대상으로 도입할 수 있다

는 것이 프레게가 생각한 원리다.

프레게가 제시한 적용조건과 동일성조건 1)적용범위 : F가 어떤 개념이든지 그 개념을 만족하는 것들의 집합이 있다. {x:Fx}는 ‘F들의 집합’을 나타내며 이것은 단칭명사로 기능한다. 즉, 대상을 갖는다.(논리적 대상이다.) 이 원칙을 SOL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F∃y(y={x:Fx}) (모든 개념에 대해서 그 개념을 만족하는 대상들의 집합이라는 대상이 있다.) 2)동일성조건 : {x:Fx}={x:Gx} ↔ ∀x(Fx↔Gx) / 즉 외연이 같다. (F의 집합과 G의 집합이 같을 조건은 F의 모든 원소가 G의 원소이고 그 역도 성립하는 것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x:Fx}를 대상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HP보다 단순하다. 이것이 프레게의 Axiom V다. 프레게는 y={x:Fx}가 논리적 원칙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HP를 도출 할 수 있다.

[Nx:Fx] := {G: G≈F}(F와 외연이 같은 개념들의 집합) 즉, ‘F의 수’라는 것은 F와 외연이 같은 개념들의 집합으로 정의 된다. 수는 개념들에 적용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것은 Second level concept(2차 개념)이다. 이렇게 정의하면 HP가 따라 나온다. [Nx:Fx] = [Nx:Hx] ↔ ({G: G≈F} = {G: H≈F} ↔ F≈H)

때문에 프레게는 ‘~의 수’보다 ‘~의 집합’, ‘~의 외연’이 보다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이것은 수의 적용범위, 주제중립성을 잘 보장한다고 생각된다. 어떤 것이든 1:1 대응 가능한 모든 집합들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치명적 파국과 결말 프레게가 제시한 원리에 대해서 두가지 문제가 있다. 1) 이 원리가 시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이것은 ‘수’를 외연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무엇이 외연인지를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는한 이 정의는 만족스럽게 적용범위를 제시하지 못한다. 신프레게주의자(Neo-Frege)주도 적용범위의 문제가 수를 외연으로 환원한다고 해도 해결될 수 없다고 본다.

2) Axiom V는 비일관적이다. {x:Fx}={x:Gx} ↔ ∀x(Fx↔Gx) x∈y := ∃F(Fx∧y={z:Fz} / x가 y에 속한다. := x가 만족하고, 그 외연이 y인 어떤 개념이 있다.

여기서 x와 y는 모두 단청명사다. 이렇게 만들 수 있다면, 프레게의 외연은 일종의 집합론이다. 따라서 외연을 단칭명사로 쓰는한 어떤 개념이 있다면, 그 개념의 집합이 있다.

x∈x := ∃F(Fx∧x={y:Fy} / 그자신이 원소가 되는 집합 x∉x := -∃F(Fx∧x={y:Fy} / 그자신이 원소가 되지 않는 집합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집합들의 집합 r을 고려하자. r = {x:x∉x} r∈r ↔ r∉r

이렇게 모순이 따라나온다. 따라서 Axiom V는 논리 원칙으로 도입할 수 없다. 이것이 유명한 러셀의 역설이다.

쓸쓸한 결말과 뒷정리 외연을 도입하는 것은 결국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때문에 신프레게주의자들은 “산수의 기초”의 작업이 상당한 성과라고 평가하며, HP를 분석적 진리로 받아들이고자 한다.(상당한 논란 거리다.)

칸토르의 경우 집합론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칸토르가 집합을 명시적으로 정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칸토르의 집합론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기본원칙을 제시하고 이것이 일관적임을 보여야한다.(공리적 집합론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프레게의 기획이 상당히 그럴듯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프레게의 기획은 수학의 주제중립성, 선험성의 원인을 논리적 진리에서 찾았다. 프레게의 기획은 비록 실패했으나, 사람들은 이것이 실패의 한 사례일 뿐 이 기조에는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프레게의 주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봐야 한다. 만약 프레게가 의도한 것이 만약 어떤 형식체계(어떤 것이 규칙인지 아닌지를 기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체계)가 있어서 그 체계가 모든 수학적 진리를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라면, 이것은 불가능하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따르면, 산수를 만족스럽게 기술할 수 있는 체계 L에서 참인지 거짓인지 결정할 수 없는 산수에 관한 문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