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책임감조차도 없어진 어른이라니. 비워냄은 책임감조차도 버려낼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때때로 저는 담금주와 와인, 그리고 샴페인에게 질투심을 느낍니다. 무엇을 그렇게 오래 넣어둘련지요.
냉장고 문 뒷편에서 너무 익어버린 김치를 담은 통은 삶의 영속성과 비워냄의 미학을 노래합니다. “살다보면 알게 돼. 비운다는 의미를”라고요. 정작 비워지지않는 김치는 이제 김치찌개에도 너무 시어 넣기 망설여질텐데요.
갖지 못함을 갖지 못해 안타까운 이 현실은 다시금 내가 담아버린 것들을 되돌아볼 충동을 불어넣습니다. 더 가지지못해 슬픈 탓에. 아니 단 하나의 입맞춤도 나눠보지 못한 차가운 보온병인 탓에.
눈을 감고 천천히 생각해보렵니다. 애매하게 마셔진다면야. 외려 침의 아밀라이제와 구강균이 곰팡이를 번식시킬까요. 사실 그 둘은 딱히 관계가 없을겁니다.
저는 언젠가. 제가 버리지 않고 버림당하는 단 하나의 현실을 상상합니다. 스댕은 녹 마저도 갖지 못할까요. 차가운 저에게 닿을 따뜻한 당신의 입술과 코만 우스꽝스럽게 반사될 볼록성을.
물은 흐르고 유리는 그보다는 느리게 흐릅니다. 그 사이에 멈춰버린 저는 흘러간 시간들과 인연을 더듬어보입니다. 왜 그건 나의 몫일까요, 덕분에 나는 그들을 흐르지 못하도록 막아두었습니다. 치열하게 살다보면 너희들도 요거트나 로마네 꽁티가 될지도 모른다고.
나를 봐. 여전히 생수 페트병일지라도 상한 달걀과 신 김치 사이에서 치열하게 노력한다고. 조금만 다른 관점을 택하란거야. 그들을 단순히 담아주지 말고 내가 구분짓는 안과 밖의 화용론적 함의를 기억해보라고. 의미를 결정짓는것은 결국
… 이기적일까.
푸른곰팡이, 포도상구균, 미세플라스틱. 나도 모르게 나버린 작은 구멍 자유롭지 않아 이 현실은 당신의 숨결에 닿아 포도당과 산소를 만들어내지는 못할거야
내 구멍에서 나온 약간의 촉촉함은 다가올 장마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