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꽃잎이 다 져버렸음에도 햇살이 번지듯 또 다시 화사해지는 계절 사이로. 그 흩어지어 사라져 죽음이 아름답길 바라올 수 있길 요원하는 꽃잎 사이로 몸을 숨긴 채 몇 자 다시 나의 가슴에 새긴다. 우리의 가슴에 새긴다. 나의 말은 우리가 떨어진 사이를 까맣게 채운다. 요즘 봄은 봄 같지도 않다. 한 달 채 되지 않는 봄이 추위와 더위를 오가며 이게 겨울인지 여름인지 알쏭달쏭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이것을 봄이라 느끼지 못하는 내 어리석고 낯선 계절감각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달력 한 장을 봄으로 물들이기도 전에, 우리는 어디서 어느새 어떻게 어 하는 찰나의 순간에 떨어지는 꽃잎을 밟으며 저것들 처럼 바닥을 껴안으며 차갑게 작별하고 있다.

오랜만이라 눈물 겹다. 참으로 눈물 겹다. 내 변한 것은 하여금 다시금 짧아진 머리카락과 몇 번을 잘라낸 손톱들 뿐인데. 네 변한 것은 투명하게 사라져 흔적마저 더듬을 수도 없는 공백 뿐이라 그저 당신들 서 있던 자리에 기억을 오려붙인다. 몇 번이고 또 가고 다시 올 봄을 이리도 반기는 것이 내외가 외로운 까닭이고 대화를 나눌 친구가 적어 창백한 말 몇 자 적고 떠나는 이유이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외벽을 허문다
깨트린 자신을 들고 오는 길이외다
조각조각 부서진 거짓들로 만든 길이외다
벌거벗은 채로 세상에 던져진 수치와 부끄러움이외다
(발자국도 지워진 이곳에 왜 서성거렸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