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님이 이사람들이 대화하는 내용을 캡쳐하여 나에게 보여줬고, 수준높은 토론상대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상대가 다 장난감이라는 말에 궁금해서 들어와봤다. (나와 상관없는 대화는 적절하게 필터링)

(공지를 읽고 감상문을 쓰라캣다.)

[공지]

───

[중요]

  1. 논리
  2. 책임
  3. 성찰

───

[규칙]

경고

  1. 규칙을 안 지킴
  2. 매우 심한 단타
  3. 비틱질, 친목질
  4. 역겨운 사상 강요
  5. PC주의, LGBT 주장

강퇴

  1. 홍보, 도배, 컨셉
  2. 경고 3회 누적
  3. 씹게이

───

[안내]

  1. 경고 카운트를 실시간으로 알려주진 않는다.
  2. 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 규칙을 어기게 만들어라.
  3. 대화 주제와 방식은 자유.
  4. 규칙은 융통성있게 적용. 씹게이 강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게이유머는 허용하나 진짜 씹게이짓을 하는 건 참지 않는다.

[권력 행사]

  1. 대상이 홍보, 도배, 컨셉충일 경우
  2. 방장이 부재일 때 경고가 3회 이상 누적된 똥이 생길 경우

‘군─바’인 관계로, 알잘딱 맡기겠음

방트겐슈타인: 어서오세요 공지 읽고 감상평 짦게 남겨주세요

민주은: 좋은 공지네요.

방트겐슈타인: 어떤 점이 좋으셨나요?

민주은: 씹게이와 보편적 도덕기준 사이의 본능적 유대감을 통한 인지적 오류 해소와 신파적 해석 담론 장에 사색하는 가언-편린이자 자기표현이라고 봅니다.

방트겐슈타인: 좋네요

민주은: 인터넷속의 서사적 클리셰를 소위 대안적 규범에 키치적으로 부여해 리버럴의 보편주의적 이데올로기로부터 탈주하고 규범의 존재의의를 해방적인 놀이로 치환한것이 아닐까요.

방트겐슈타인: 예술하시나요? 장황한 말은 그다지 추천드리는 대화방식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이 방은 논리적 사고방이니까요 그냥 무논리로 앵앵대는 사람이 자정작용안되는 집단은 미리 차단한다. 라는 개념입니다. 뭐 장난치고싶은 마음은 이해되는데 인사부터 장난치면 그다지 좋게보이진 않네요

(이사람이 어느정도의 수준을 가진 사람인지 궁금해서 일부러 어렵게 말한점은 맞지만, 솔직히 맥락도 못짚었다.)

민주은: 서양권 언어나 논리기호면 그게 맞을수도 있으나, 제가 생각하기에 한자기반 언어의 주된 장점은 Language density가 높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Kerning이 별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 맥락에서 흔히 말하는 번역투에서 직유법이나 은유법이 많이 나오는 이유도 생각해볼수 있겠군요.

(나는 대충 이렇게 말하면 Language density, 언어의 밀도가 높아서 이렇게 말한단 뜻이었다.)

방트겐슈타인: Density는 안높습니다. 다만 모호한 표현으로 인해 공감적 전달이 가능해 진실된 소통에 가까울 수 있다는 점이죠. 물론 그 단점으로 왜곡된 소통도 가능성이 높아지죠

민주은: 아니요, 신경학적으로 라틴어 계열 언어는 표어문자에 가깝습니다 철자의 조합보다는 단어의 윤곽으로 뜻을 유추하기때문이죠

방트겐슈타인: 아니요는 무엇에 대한 아니요인가요 표어문자에 대한 언급은 안했습니다ㅏ

민주은: 그리고 모호한 표현과 language density는 별 상관 없을텐데요 굳이 걸고 넘어지자면, 좋다와 호쾌하다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방트겐슈타인: 좋다는 나의 감정에 기반한 즐거움의 표현이고 호쾌하다는 것은 환경이나 대상에 대한 흥겨움의 표현입니다 나대지말고 가만히 있어봐 다른 장난감 들어왔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서 나의 전형적인 실수를 범했다. 항상 토론을 시작할때 내가 할수 있는 최대한 명료하고 간단하면서도 직관적인 언어로 시작하면, 가끔씩 사람들이 이걸 못알아들을때가 있다. 주제도 파악 못했는데 사람들이 동문서답을 하니까 상대가 이해한것의 한두단계보다 앞서서 말을 하니까 말이 안통할때가 있다. 그나저나 나를 다른 장난감이라 하는걸 보니 기가 막힌다. 이런 토론은 처음이다.)

민주은: 순이비 읽어봤음요?

방트겐슈타인: 순이비가 뭔데요?

민주은: 인간지성에관한논고 읽어봣음요?

방트겐슈타인: 아 순수이성비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ㅈ대로 줄이지 마세요. 경고드립니다

방트겐슈타인: 순수이성비판 읽어봄

(솔직히 철학과 학부수준에서도 순이비 원전을 읽은사람은 잘 없다. 읽어봤다 하면 거르려고 했는데, 진짜로 읽었을수도 있지 않은가. 대화를 계속 하기로 했다.)

민주은: 독서동호회서 그렇게 줄여부르길래.. 오 진짜 읽어봤어요?

방트겐슈타인: ㅇㅇ

민주은: (“인간 지성에 관한 논고 읽어봤음요?” 를 링크하며) 이건요?

방트겐슈타인: 흄 안좋아해서 안읽었어요

민주은: 그럼 하나만 질문해도 되나요

방트겐슈타인:

민주은: 순이비 읽은 사람 처음보는데 Uniformity Principle를 순이비에서 어케 해결했죠 존스튜언트밀이요 논리적 사고 방이니까 정확하게는 해결했다고 주장한거죠

방트겐슈타인: 모르겠는데요 내용을 설명해주세요

민주은: 요즘 암스트롱의 non-deductive a priori induction같은거 공부하고 있어서 순이비 읽으셨다길래 혹시나 한거죠 뭐.. 알면 토론하고 아니면 넘어가는거죠~

방트겐슈타인: 지식테스트 끝났으면 알려주시죠 무슨 내용인지 무슨 내용인지 10분내로 대답안하시면 그냥 내보낼게요

민주은: 하하 새벽에 담소 하나 나누렷더니 어쩔수 없네요

방트겐슈타인: 인터넷 검색 쓰셔도 충분한 시간 아닌가요? 10분 뭐 도망치려면 잘가세요

(나도 4시라 자러 들어가려 했는데 이말 듣고 잠이 깨더라.)

민주은: 칸트가 항상 하는 말이 인간, 선험이죠

방트겐슈타인: 인간 선험이라고 표현안하는데요

민주은: 자연의 제일성 문제를 인간 내부의 선험적 직관에 종속시켰습니다 (아래 칸트의 3번을 참고하라.)

방트겐슈타인: 제일성 문제도 못들어본 단어네요

민주은: Uniformity Principle가 더 유명하긴 합니다

방트겐슈타인: 순수이성비판에서 제일성이라고 언급된건가요? 아니면 본인이 연관지어 언급한건가요?

민주은: UP는 국어 비문학에서도 나왔었죠 순이비에도 나오고





칸트: 1.”But, after all, the possibility of such noumena is quite incomprehensible, and beyond the sphere of phenomena, all is for us a mere void; that is to say, we possess an understanding whose province does problematically extend beyond this sphere, but we do not possess an intuition, indeed, not even the conception of a possible intuition, by means of which objects beyond the region of sensibility could be given us, and in reference to which the understanding might be employed assertorically.” (A255/B311)

  1. All mathematics. E.g., 7 + 5 = 12. To get from 7 and 5 to 12, we must “go beyond [the] concepts and avail ourselves of the intuition corresponding to one of the two: e.g., our five fingers, or five dots” (AW 726a). This is more immediately plausible with larger numbers. Same goes for geometry: “That the straight line between two points is the shortest is … synthetic … [f]or my concept of straight contains nothing about magnitude, but only a quality” (AW 726b).
  2. The principles of natural science (esp. physics). E.g., the conservation of matter: “For in the concept of matter I do not think permanence” (AW 727a).
  3. Metaphysics. “Metaphysics is not at all concerned merely to dissect concepts of things […] and thereby to explicate them analytically. Rather, in metaphysics we want to expand our a priori cognition. In order to do this, we must use principles which go beyond the given concept and which add to it something that was not contained in it” (AW 727a). Kant claims that if we consistently applied Hume’s argumentative techniques, we’d have to conclude that no synthetic a priori knowledge is possible. But this is bad! It would mean that “all we call metaphysics,” “all pure philosophy,” and “pure mathematics” would all have to be abandoned (727b).

    (진짜 있음.)

    henderson: https://plato.stanford.edu/entries/induction-problem/#P3
    As we have seen in section 1, Hume takes demonstrative arguments to have conclusions which are “relations of ideas”, whereas “probable” or “moral” arguments have conclusions which are “matters of fact”. Hume’s distinction between “relations of ideas” and “matters of fact” anticipates the distinction drawn by Kant between “analytic” and “synthetic” propositions (Kant 1781). A classic example of an analytic proposition is “Bachelors are unmarried men”, and a synthetic proposition is “My bike tyre is flat”. For Hume, demonstrative arguments, which are based on a priori reasoning, can establish only relations of ideas, or analytic propositions. The association between a prioricity and analyticity underpins premise P3, which states that a demonstrative argument establishes a conclusion whose negation is a contradiction.

One possible response to Hume’s problem is to deny premise P3, by allowing the possibility that a priori reasoning could give rise to synthetic propositions. Kant famously argued in response to Hume that such synthetic a priori knowledge is possible (Kant 1781, 1783). He does this by a kind of reversal of the empiricist programme espoused by Hume. Whereas Hume tried to understand how the concept of a causal or necessary connection could be based on experience, Kant argued instead that experience only comes about through the concepts or “categories” of the understanding. On his view, one can gain a priori knowledge of these concepts, including the concept of causation, by a transcendental argument concerning the necessary preconditions of experience. A more detailed account of Kant’s response to Hume can be found in de Pierris and Friedman 2013.



방트겐슈타인: 뭐 일단 말없이 계속 듣겠습니다 충분히 정리해서 말해주세요

(아마 리트나 평가원이었을거다. 찾아보려니 안나옴.)

민주은: 베르그송이 칸트 깔때도 언급했을텐데요

엄지척 튜브: 그래서 개인의 생각을 말해주면 좋을듯 덧셈식으로 …

민주은: 그럼 과정을 생략하수밖에 없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Henderson의 의견과 비슷합니다 IBE가 귀납과 어떻게 구별되는지 불분명하다고 생각하는거죠

방트겐슈타인: (Uniformity Principle를 순이비에서 어케 해결했죠를 링크하며) 이거에 대한 답을 써주시면 됩니다 5분 남았는데 여유로우시네요

민주은: 예? (자연의 제일성 문제를 인간 내부의 선험적 직관에 종속시켰습니다를 링크하며) .

엄지척 튜브: 어케 초딩 논리만 못하냐 .. 라면 먹으러 갑니다 재밌게 대화들 하세요

민주은: 아까 언급한 암스트롱은 귀납을 IBE로 환원하되, 이를 선험적 추론으로 감주함으로써 non-deductive a priori induction을 제안한거죠

방트겐슈타인: ibe의 풀스펠은 뭐죠?

민주은: 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n

방트겐슈타인: 최적의 설명을 위한 추론이라 번역해도 문제 없나요?

시영님: 귀추법

민주은: 맞습니다

방트겐슈타인: 귀추법이군요 (자연의 제일성 문제를 인간 내부의 선험적 직관에 종속시켰습니다를 링크하며) 전 이 해석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칸트는 자연의 제일성에 대해 물자체의 질서로 받아들였고 선험적 직관에 종속시킬 의도가 없었다고 봅니다

(인용한 순이비를 보면 이말은 틀렸고, 다음에 말하는 내용은 주제와 상관이 없다.)

방트겐슈타인: (삭제한 메시지)

방트겐슈타인: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칸트는 자연의 제일성에 대해 불가지론에 가까운 입장을 취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인지하는 인식은 선험적 직관에 의해 가공된 형태로 존재할 뿐이다. 라고 말한 것에 가깝습니다 (삭제하고서 다시 보냈다. 표현을 약간 수정하긴 헀다.)

민주은: “우리가 인지하는 인식은 선험적 직관에 있을뿐이다를 말한거라고봅니다” 맞습니다, 사실 주제와는 많이 벗어났지만 칸트의 세계에서 “선험적 종합판단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답변과 비슷한 결론이 나올듯합니다. 사실상 별 다른말이 아니죠

방트겐슈타인: 말할수 없는 것은 말 못하겠지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것이다. 라고 표현했는데 나중에 결국 니가 말한건 그것 뿐이잖아. 라고 하면 억울하긴 하겠쬬

민주은: 그래서 다른 의견이 뭐죠?

방트겐슈타인: 그래서 종속이 아니란 것이죠 “진리는 사람안에 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진리는 도달할 수 없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진리는 사람안에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의견입니다. 칸트의 의도는 “사람 안에 있다” 보다는 “진짜 진리는 도달할 수 없다.”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민주은: 우리의 인식에서, 과거에 역사에 근거한 개별적 규칙성에 대해 투사가능한 투사를 투사한다고 확신해도 그러한 재귀적 특성이 과거의 회귀적 특성에 회귀한다는게 밀의 의견이고,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인지하는 인식은 선험적 직관에 의해 가공된 형태로 존재할 1뿡이다” 가 칸트의 의견인데, 아쉽게도 방트겐슈타인님의 이번 주장은 별 연관이 없습니다. 굳이 언급하자면, 여기서는 “희망의 물음”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이 논의에서는 “희망의 물음”이 희망적으로 대답할것을 희망하는걸 전제합니다. 투사체계와 자연적 체계의 완전 평형은 완전한 경험초월적 존재의 신적 예지가 아닌 당상, 가능하지도 않고 여기선 언급하지도 않습니다.

방트겐슈타인: 희망의 물음은 누가 어디서 언급한 내용인가요?

민주은: 대표적으로는 goodman이죠 성이 정말 특이하죠

방트겐슈타인: 검색해도 안나오네요

민주은: 괴델 공부하다보면 굿맨은 모를수가 없죠 contemporary variant of nominalism에 Stanislaw Lesniewski랑 함께 시초격인 사람입니다

방트겐슈타인: question of hope 가 아닌가 보네요

방트겐슈타인: 굿맨이 검색이 안된다는 게 아니라 희망의 물음이 검색이 안된다는 소리입니다 뭐 어쨌든 모르는 게 당연해서 얘기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는 내용은 이해했습니다

민주은: 모르는게 당연하다기 보다는, 그것을 다루는게 아닙니다. LP와 비슷한 맥락에서 진리접근의 방법론적 문제는 현대철학에서 주요한 논점입니다.

민주은: 이것도 굿맨이랑 흄에 가까운 설명이고 카르납같은 사람들 의견은 좀 다른 편이죠

방트겐슈타인: 이것은 어떤 문장을 지칭하는 거죠?

민주은: 이거의 연장선상에서 포퍼의 도전적 투사도 있고요 평형개념이랑 VPS, CPS을 사용하는 논리 전부를 말하는거죠 약한 귀납적 투사에서 강한 귀납적 투사로 verisimilitude가 가능하다는거죠 근데 도전적 투사나 보수적 투사나 맥락에서 좀 동떨어지기도 해ㅛ죠 어느정고 현실주의죽인 관점에서 접근한것도 없잖아 있으니싸요 그래도 귀납법구제에 대한 도전은 맞으니 주제에 어긋난건 아니죠

방트겐슈타인: vps cps는 뭐죠?

민주은: 아까 말한 도전적 투사 전략, 보수젓 투사 전략입니다 원래 줄여서 말하는데 이래서 그냥 한국어로 풀어맣했어요

방트겐슈타인: 그렇군요 일단 배우는 것은 정리되었습니다

(힘들어서 article 몇개 보내주고 잤다. 솔직히 이게 토론인가도 의문이고 너무 피곤한 상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