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이 이틀 정도 지난 우유처럼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유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진즉에 모두 마셔버렸을 텐데. 냉장고도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냄새나는 반찬들과 중국산 싸구려 영양제들이 빼곡해지면, 새벽잠이 줄고 뱃속에선 달달거리는 소음이 들려오면. 모든 반찬에서 삭은 김치 냄새가 풍겨오면.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안에서는 열리지 않는 문이라니요. 고작 자그마한 문짝 하나 여닫는 데에 돈이 문제라니요. 우리집 냉장고는 그리 크질 않아서. 냉동인간은 못 되고 냉장인간은 어떠려나요.
상상을 합니다. 냉장고 속 작은 우주를요. 나는 유통기한이 이틀 정도 지난 자그마한 우유입니다. 단 한번의 입맞춤도 나눠보지 못한 새하얀 우유입니다. 끝을 모르고 익어가는 김치가 냄새를 풍겨댑니다. 너는 절대 달아날 수 없어. 차라리 나처럼 이곳에 익숙해지라구. 나는 그저 누군가의 갈증을 달래주고 싶을 뿐인걸. 다른 방식을 택해보란 거야. 나를 봐 발효식품은 수명이 아주 길지. 죽을 각오로 발버둥치면 요거트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숨바꼭질을 하다가 냉장고에 갇혀 죽은 아이 이야기를 아시나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나요? 미안해요, 갑자기 웃어버려서. 내가 죽거든 민트초코와 닥터페퍼가 가득 채워진 냉장고를 함께 묻어 달라던 친구의 우스개소리가 떠올랐거든요.
(luce_2116) 이건 인정해주겠다. (seunx.xeoni) 맛잇겟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