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역시나 상대에게 허락은 안받았기에 H로 기술한다. (다른 사람이긴 하다.)
상당히 개판이니 읽는것을 추천하진 않는다.
토론보다는 설명에 가까운 대화였다.
(설명 > 이해못함 > 추가개념 설명 > 더 이해못함 > 끝)

H: 항상성 테제(uniformity thesis) 언급하신 거 보고
https://blog.naver.com/triad-institute/220572091907 이 블로그 찾았는데 되게 유익한 것 같습니다 항상성 테제 언급한 게시물은 blog.naver.com/triad-institute/220576036951

(https://whoisrealminjueun.netlify.app/2023/08/09/%EA%B7%80%EB%82%A9%EB%85%BC%EC%A6%9D)

별 관련은 없지만, 제 3자의 입장을 유아론적으로 해석함에 대해서 대화하다 (UP)에 대해서 말이 나와서 약간 설명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도 유아론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건 제가 어제 말한 타인이 목적(의식)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나 하는 질문과 일맥상통 하는 듯합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후설과 관련된 논의를 공부해봐야 할 듯합니다

민주은: 맞습니다 저 두 블로그 글 모두 읽어보았는데 좋은 글이군요 다만 칸트의 비판 철학이 흄의 문제를 결국에는 해결하지 못했다고 보는것이 맞겠고요 하지만 철학자들이 포기한것은 아니고, 향상성테제는 여전히 현대철학의 주요한 담론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후설의 현상악도 H님의 질문에 대해서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 각 개인의 의식과 세계의 관계를 현상이라고 해석하고, 이를 통해 타자에 대한 공동경험의 세계에서의 상호주관성을 통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H: 넵 저도 얼핏 보기로는 그런 것 같습니다

민주은: 그렇지만 “타자의 경험적 의식이 과연 나에게도 같은 원리로 적용되는가?” 라는 호배님의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고 보는것이 맞겠죠 아니 오히려 그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편에 가깝겠습니다

H: 그럴 것 같았읍니다

민주은: 후설은 자기지식에 대한 일인칭 특권은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렇지만 이 문제와 관계 없이 자지주의를 공부할때 후설을 거쳐가는건 매우 좋은 학술태도겠습니다 후설과 하이데거의 사제관계는 워낙에 유명하고 비단 하이데거뿐만 아니라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등 대륙철학에서 후설은 무척이나 중요한 철학자였으니까요

H: 떠맥여주시면 안 될까요

민주은: 나중에 시간나면 같이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미제스도 후설을 언급한적이 많지만 알프레드 슐츠가 베르그송이랑 후설과 교류가 꽤 많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H: 좋읍니다

며칠뒤!

H:</mark 후설 상호주관성 개념 넘 어려워요

민주은: 칸트헤겔후설이 저는 실존주의를 깊게 파려면 무조건 거쳐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리스 메를로 퐁띠란 사람의 지각의 현상학이나 이남인의 현상학과 질적연구 두 책으로 입문하는게 좋은데 또 깊게 파려면 칸트는 당연하고 스피노자 고트프리드 빌헬름 라이프니츠 이런 사람을 공부해야할겁니다 제가 후설보다는 프레게쪽을 공부해서 잘 모르기는 한데 막막하죠 하이데거는 진짜 머리가 아픈데 ㅋㅋㅋ (그냥 글이 진짜 머리가 아프다.) 각설하고 호배님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선 현상학적 환원같은건 필요가 없겠고요 우선 후설의 정의하는 의식의 특징을 짚고 넘어가야할텐데 첫번째로는 의식은 개별적인 경험이 묶여져서 하나의 개별적인 경험을 뽑아낼수 없다는거고 두번째로는 의식은 그냥 흘러간다는겁니다 어느 한순간의 의식 이런걸 부정해요 그리고 (세번째로는) 의식은 투명하다는 건데 쉽게 말하자면 내가 나의 의식을 인식하고 있다는겁니다 네번째로는 의식은 지향적이라는데, 후설의 철학에서 의식은 항상 대상을 갖습니다 여기서 존재하는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상이라면 실재론, 의식이라면 관념론이고 후설은 대상과 의식을 동치시켰다고 보는겁니다다

H:</mark 근데 후설의 상호주관성은 타자가 주관을 지니는지 어떻게 아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아닌가여 (현상학과 질적연구방법(이남인)을 보내주었다.)

민주은: 어떻게 보면 그 대답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정확히는 과학만능주의의 타계에 후설의 초월론적 현상학을 사용했다고 보는것이 맞겠죠 저 논문에서도 “은 수학적인 정량적 분석의 방법 이 지니는 한계 및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질적연구방법을 개발해 왔다. 이러 한 다양한 유형의 질적연구방법 중의 하나는 바로 현상학적 질적연구방법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네요

H: 그렇군여 후설이 말하는 상호주관성이란 무엇인지 설명 가능하실까여

민주은: 우선 오늘 말씀 드린건 상호주관성이 아니라 초월론적 현상학입니다 상호주관성은 그 이후의 내용인데, 어차피 초월론적 현상학 없이 상호주관성을 설명하기는 어렵기도 하고요. 초월론적 현상학의 결론이 의식과 대상을 분리하지 못한다지만, 여기서 호배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일정부분 가능할텐데 이제 “타자에 대한 경험”이라는 개념이 추가됩니다 아까 말했듯이 대상과 의식을 동치시켰는데, 첨언하자면 의식과 대상이 관계를 맺음으로서 서로의 존재가 보장된다는거죠 대상이 의식속으로 들어오면 의식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걸 노에시스, 의미가 부여된것을 노에마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연적 태도를 가지고서는 철학을 할수 없고, 따라서 판단을 중지하고, 가정과 전제를 제거하고 경험만을 기술하는 태도를 에포크를 친다고 표현하고, 바로 이걸 현상학적 환원이라고 할겁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타자에 대한 경험이 주어진다면, 이러한 과정속에서의 나의 “의미부여는” 수많은 관점중에 단지 하나뿐이란겁니다. 이게 바로 어제 말씀드린 자기지식에 대한 일인칭 특권이 없다는 말일겁니다

나중에 후설은 한번 더 발생적 현상학이란걸 들고옵니다 모든 현상은 주관의 체험인데, 주관은 시간적 잇따름을 체험한다고 설명합니다.’ 정확히는 시간적인 발생적 정초관계의 관점에서 볼 때 선반성적 의식으로서의 외적 지각이 반성적 의식으로서의 내적 지각에 선행한다는 건데 이전까지는 정적인 현상학이라면 이제 시간개념을 추가해서 발생적 현상학이라는 개념입니다 와 저도 많이 꼬였는데요..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아까 말한 의식의 투명성 기억나시나요? 헐어내기, 쌓아가기, 가로지향성, 세로지향성같은 개념이 있거든요

H: 훔 오분 뚝딱 철학 보고 있는데 후설은 의식의 특징을 네 가지 정도 제시했다고 하더라구요

민주은: 네넵 맞습니다 5분뚝딱철학은 상호주관성을 다루지 않는것 같은데요

H: 의식의 투명성은 의식하고 있는 걸 모를 수 없다는 그 특성인가 봅니다

민주은: 여기서 후설인지 메를로퐁티인지 잘 구분이 안가는데 의식의 투명성을 부정할겁니다

H: 대상과 의식이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대상이 대상임을 알고 의식이 의식임을 안다 이런 설명 적절할까요

민주은:</mark 네넵

H: 언뜻 보면 그럴 듯하네요 아무런 대상이 없는 의식은 상상이 잘 안되긴 합니다 의식이 없으면 대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있나 싶기도 하구요

민주은: 하지만 의식이 투명하게 주어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처음이 어딘지 끝이 어딘지 알수 없는 연속체라고 보는데요, 영상에서도 언급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정적현상학(영상에서 다루는 내용) 에서도 이걸 인정하고 초시간적인 정초관계의 관점을 전제할겁니다

H: 초월적 의식인가여 그게

저는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생활세계가 뭐 그리 중요한가 싶었습니다. 인간의 감각은 오류를 범하기 때문에 이성을 통해 세계의 진짜 모습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의식과 대상이 별개로 존재한다는 가정을 은연 중에 깔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의식과 대상은 따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 수도 있겠읍니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진리 탐구에 있어 의식과 대상이 맺는 관계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고, 따라서 생활세계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겠네요.

후설은 생활세계에서 주체가 타자를 어떻게 체험하는지, (자연적 태도가 아닌 현상학적 환원을 거쳐 현상학적 태도로) 기술하고 사유하여 상호주관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제가 이해한 게 맞을까요?

민주은: 네넵 어느정도 맞습니다 결국 후설은 여러 방면의 학문접 접근 방법에 과학적 시각이 보편화되면서 생기는 “생활세계”, 즉 경험적 관점으로 이해되는 공동체적 시각으로 학문의 요소를 돌리려던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인 사견을 덧붙이자면 후설의 이러한 생각이 신심명의 구절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至道無難 지도무난- 도에 이르기는 어렵지 않다. 唯嫌揀擇 유혐간택- 오직 고르고 분별함을 싫어하니 但莫憎愛 단막증애-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洞然明白 통연명백- 분명하게 꿰뚫으리라. 후설 철학에서의 에포크와 비슷한 말이 아닐까 싶어요

**중요*** 사실상 여기서부터 제대로된 설명이다.

H: 의식을 가진 주체가 타자를 체험할 때 “오 이 새끼 꼭 나처럼 의식을 가진 것마냥 말하고 행동하네? 이 새끼도 의식을 가진 건가?“ 라는 식으로 체험하는데 이게 추론 같긴 하지만 실제적인 체험이라는 것 같읍니다 다른 분 블로그에서 본 바로는 대충 이런 설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체험을 했다는 사실이, 그 체험을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 것 같아요 현상학적 환원과 현상학적 태도로 기술 및 사유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됐길래 그런 결론으로 이어지는 건지가 궁금합니다

민주은: 제가 저번에 종국에는 경험에 의존적이라는 말을 했던거 기억나시나요? 내가 감각장을 경험적으로 귀속시킬수 있는 유일한, 신체기관 각각에서 개별적인 지배가 가능한 유일한 물체가 자기 몸 자신입니다. 여기까지는 자기소유권과 비슷한 논리인데, 후설은 나의 원초적 세계에서 타인의 몸을 나의 몸과 유사한 몸으로서 경험한다고 할겁니다 물론 다른 모든 대상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물체로써 경험되지만, 그것과 물체로서 파악되는 “유사성”에 의존하여 단순히 물체로서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죠

H: 넵 다른 물체와 다른 무언가가 체험된다는 것 같은데 그게 어떻게 논거가 될 수 있나 싶어서요

민주은: 데카르트처럼 나”만” 원초적인 환원을 통하여 나의 원초적 세계를 확보한 후 초월론적 주간으로서 타인을 경험하고, 그를 토대로 상호주관적인 세계를 구성하는것이 아니라는겁니다. 나뿐 아니라 모든 주체는 나와 마찬가지로 원초적 환원을 수행한 후에 타인 경험을 하면서 상호주관적인 세계를 구성한다캅니다

H: 근데 그건 타자가 의식을 가졌다는 걸 전제하는 거 아닌가유

민주은: 넵 그래서 제가 종국에는 경험에 의존적이라는 결론을 냈던겁니다 유리적인 파악을 통해 지금까지의 경험을 기반으로한 타인의 몸과 나의 몸의 유사성 파악 이게 의식을 가졌다고 추리하는 유일한 논거로 활용할겁니다 최근 20년 안의 논문을 찾아보면 추가적인 논리가 있을수도 있는데 제가 알기론 이게 전붑니다

H: 후설 입장에서는, “감각을 통해 얻는 일반적인 경험을 자연적 태도로 해석하는 것과는 다르게, 나의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 순수의식과 대상이 맺는 관계를 고찰하려 내린 결론이 어떻게 같을 수 있노?”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민주은: 맞는 말씀이지만, 후설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두번째 방식은 대상 및 세계의 구성을 초시간적인 타당성 정초관계의 관점에서 해명하는이 정적 현상학, 의식들 사이의 연쇄적인 발생적 동기주여 관계를 찾아내고자 하는것이 발생적 현상학이라고 정의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후설을 모르면 내 말을 이해 못하고 후설을 알면 내 말을 들을 필요가 없기에 나중에 글로 정리해서 올리기로 헀다! 미안하다